1270년 고려 원종이 몽골에 완전히 굴복하고 개경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어요. 38년간 강화도에서 버텨온 대몽 항쟁이 끝나는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군대 일부가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독자 저항을 선언했어요. 이들이 삼별초예요.
삼별초란
삼별초는 고려 무신 정권이 만든 특수 부대예요. 야별초(좌별초·우별초)와 신의군으로 이루어졌어요. 신의군은 몽골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병사들이에요. 이들은 무신 정권의 친위대였고 전투력이 높았어요.
고려 왕실이 몽골과 화의하고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돌아가기로 하자, 삼별초는 이를 거부했어요. 이유는 복잡해요. 왕의 결정에 반대한 애국적 저항이기도 했고, 몽골의 지배를 받으면 자신들(무신 세력)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이기도 했어요.
진도 – 새 정부 수립
1270년 6월, 삼별초는 배중손의 지휘 아래 왕족 왕온을 새 왕으로 추대했어요. 그리고 1,000여 척의 배에 관부 문서와 무기, 백성들을 싣고 강화도를 떠났어요.
목적지는 진도(전라남도)였어요. 진도 용장산성을 본거지로 삼았어요. 독자적인 정부를 세우고 관리를 임명했어요. 남해안 일대의 군현들을 장악했어요. 일본에도 몽골에 함께 대항하자는 외교 서한을 보냈어요.
진도 삼별초는 한때 고려 남부의 상당 지역을 통제했어요. 몽골의 지배에 반발한 백성들이 삼별초 편에 섰어요.
여몽 연합군의 공격
고려 왕실과 몽골은 연합군을 편성해 삼별초 토벌에 나섰어요. 1271년 5월, 여몽 연합군이 진도를 공격했어요. 삼별초는 격렬히 저항했지만 전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어요. 배중손이 전사했어요. 왕온도 붙잡혀 살해됐어요.
제주도 – 마지막 거점
살아남은 삼별초는 바다 건너 제주도로 물러났어요. 김통정이 지휘를 맡아 항파두리 토성을 쌓고 항전을 이어갔어요. 제주도는 섬이라 방어에 유리했어요. 일본과의 연결도 시도했어요.
1273년 봄, 여몽 연합군이 제주도에 상륙했어요. 3년간의 저항이 끝났어요. 김통정은 포위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역사적 평가
삼별초는 오래 논쟁의 대상이었어요. 나라를 위한 충성스러운 저항인가, 아니면 왕명에 반한 반란인가. 현재는 대몽 저항의 상징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해요. 고려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어요.
제주도 제주시 항파두리에 가면 삼별초가 쌓은 흙 성터가 남아 있어요. 750년 전 그들의 마지막 거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