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문(文)을 숭상하는 나라였어요. 과거로 뽑은 문신들이 나라를 운영했어요. 군인은 천대받았어요. 그 불만이 1170년에 폭발했어요. 무신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문신들을 대거 학살했어요. 이후 100년간(1170-1270) 고려는 무인들이 실권을 쥔 나라가 됐어요.
차별의 축적
고려에서 무신의 지위는 문신보다 한참 낮았어요. 같은 3품이어도 문신이 더 높은 대우를 받았어요. 과거 급제자들이 요직을 독점했어요.
의종(재위 1146-1170)은 특히 문신을 편애했어요. 문신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시를 짓느라 국정을 방치했어요. 의종이 보현원 행차를 가는 길에, 무신들이 행차를 호위하는 동안 아무도 쉬지 못하게 했어요.
1170년 8월 보현원 연회에서 분이 터졌어요. 정중부·이의방 등이 먼저 문신 지도자 격인 인물들을 죽이기 시작했어요. 그 자리에서 수십 명의 문신이 살해됐어요. 개경으로 돌아온 무신들은 나머지 문신들도 대거 처형했어요. 의종은 폐위해 유배 보냈어요(뒤에 살해). 이를 무신정변이라고 해요.
무신 집권기의 혼란
쿠데타 성공 후 무신들 사이에서도 권력 다툼이 이어졌어요.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최고 권력자가 됐어요. 서로를 죽이며 권력을 빼앗는 일이 반복됐어요.
1196년 최충헌이 이의민을 죽이고 집권하면서 안정이 찾아왔어요. 최충헌·최우·최항·최의로 이어지는 최씨 정권이 60년 넘게 지속됐어요.
최씨 정권은 교정도감이라는 기구로 국정을 장악했어요. 왕은 있었지만 허수아비였어요. 최우는 사저에 서방(書房)을 두어 문인들을 고문으로 부렸어요. 무신 정권이지만 문화를 완전히 버린 건 아니었어요.
농민과 천민의 반란
무신정변으로 기존 질서가 흔들리자 사회 아래쪽에서도 반란이 터졌어요. 노예·천민들이 신분 해방을 외치며 일어났어요.
1193년 경상도에서 김사미·효심의 난이 일어났어요. 1198년에는 개경에서 만적의 난이 계획됐어요. 최충헌의 노예 만적이 노예들을 모아 “우리도 사람이다, 뼈와 살이 다르지 않다”며 봉기를 계획했어요. 사전에 발각돼 실패했지만, 신분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 시기에 터져 나왔어요.
몽골의 침입과 최씨 정권의 종말
1231년부터 몽골이 고려를 침략했어요. 최우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 항전을 이어갔어요. 육지의 백성들이 몽골군의 약탈과 학살을 당하는 동안 지배층은 섬에서 버텼어요.
1258년 고려 왕실이 무신 정권을 버리고 몽골과 화의를 맺었어요. 최씨 정권의 마지막 주자 최의가 살해됐어요. 무신 집권기가 끝났어요.
무신 정변은 고려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를 열었어요. 한편으로는 신분 질서에 균열을 냈고, 귀족 문화 중심의 고려가 변화를 겪는 계기가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