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3년 6월,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배들이 잉글랜드 북동쪽 린디스판 섬의 수도원을 덮쳤어요. 수도사들이 살해되고 보물이 약탈됐어요. 유럽 기독교 세계는 충격에 빠졌어요. 이것이 역사에 기록된 첫 번째 바이킹 공격이에요. 이후 약 300년 동안 바이킹은 유럽·북아프리카·중동까지 항해하며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어요.
왜 바다로 나왔나
바이킹(정확히는 노르만인·노르드인)이 스칸디나비아에서 바다로 나온 배경은 단순히 약탈 욕구가 아니었어요.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는 경작지가 부족했어요. 피오르(협만) 지형에 산이 많아 농사에 쓸 수 있는 땅이 적었어요. 인구는 늘었고 자원은 한정됐어요.
바이킹 특유의 배인 롱십(longship)이 이 문제의 해결책이었어요. 롱십은 홀수가 얕아 바다뿐 아니라 강도 올라갈 수 있었어요. 속도가 빠르고 방향 전환이 쉬웠어요. 기습 공격 후 빠르게 도망치거나, 강을 거슬러 내륙 깊숙이 들어가는 게 가능했어요.
약탈자이자 탐험가이자 상인
유럽인에게 바이킹은 약탈자의 이미지가 강해요. 그러나 바이킹의 역할은 훨씬 다양했어요. 동쪽으로 향한 스웨덴계 바이킹(루스인)은 러시아 강을 따라 흑해·카스피해까지 진출해 비잔틴 제국·이슬람 세계와 교역했어요. 키예프 루스(현재 우크라이나 지역)를 건설한 것도 이들이에요. 오늘날 러시아(Russia)라는 이름이 루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어요.
서쪽으로 향한 바이킹은 아이슬란드(874년)·그린란드(985년)를 개척했어요. 레이프 에리크손은 약 1000년경 북아메리카(현재 캐나다 뉴펀들랜드)에 도착했어요.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선 아메리카 상륙이에요.
바이킹이 정착하다
바이킹은 약탈만 한 게 아니었어요. 잉글랜드 북동부 지역(데인로)에 정착해 현지 문화와 섞였어요. 프랑스 노르망디는 바이킹이 정착해 세운 공국이에요. 이 노르망디 공국이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한 게 노르만 정복이에요. 오늘날 영어에 프랑스어 어원 단어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이 정복 때문이에요.
바이킹 시대의 끝
11세기 들어 바이킹 활동이 줄어들었어요. 스칸디나비아 지역에 통일 왕국이 세워지면서 내부 질서가 잡혔어요. 기독교가 스칸디나비아에 퍼지면서 수도원 약탈이 줄었어요. 유럽 각지의 방어 체계도 강화됐어요. 바이킹은 더 이상 불의의 기습으로 쉽게 약탈할 수 없게 됐어요.
1066년 노르웨이 왕 하랄 하르드라다가 잉글랜드 침공에 실패하고 전사한 사건을 마지막 바이킹 침공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요. 바이킹 시대 약 273년의 끝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