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 – 전사 사회의 실체

“스파르타식”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극도로 엄격하고 강인한 방식을 뜻해요. 실제 스파르타는 어땠을까요? 역사상 가장 철저한 군사 훈련 체계를 가진 나라였어요. 그런데 그 체계가 결국 스파르타를 멸망시켰어요.

헬로트 – 스파르타의 기반

스파르타를 이해하려면 헬로트부터 알아야 해요. 헬로트는 스파르타가 정복한 땅의 원주민들이에요. 노예가 됐어요.

스파르타 시민 한 명당 헬로트가 7명이었어요. 스파르타 시민은 농사일 필요가 없었어요. 전쟁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대신 헬로트가 반란을 일으킬 위험이 항상 있었어요. 그래서 스파르타는 끊임없이 군사력을 유지해야 했어요.

스파르타는 매년 헬로트에게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했어요. 그래야 헬로트를 죽여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거든요. 크립테이아라는 특수 훈련에서 젊은 스파르타 전사들이 헬로트 사냥을 했어요.

아고게 – 극단적 군사 교육

스파르타 남자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장로들에게 검사를 받았어요. 약하거나 장애가 있으면 아포테타이(“버려지는 곳”)라는 절벽에 버렸어요. 강한 아이만 키웠어요.

7살이 되면 아고게(군사 훈련 시스템)에 들어갔어요. 집에서 나와 집단생활을 시작했어요.

  • 맨발로 걷게 했어요.
  • 얇은 옷만 입혔어요. 추위에 적응시키기 위해서예요.
  • 음식을 조금만 줬어요. 굶주림에 적응하고, 도둑질로 보충하게 했어요. 단 들키면 안 됐어요.
  • 서로 싸우게 했어요.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예요.

이 훈련이 12년간 이어졌어요. 18세에 성인 전사로 인정받았어요. 30세까지 군 막사에서 생활했어요.

스파르타 여성

스파르타 여성은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 여성과 달랐어요. 운동을 하고, 레슬링을 배웠어요. 교육을 받았어요. 남편이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집안과 재산을 관리했어요.

“방패를 들고 오거나, 방패 위에 실려 오거나(죽어서라도)”라는 말이 스파르타 어머니들이 전쟁에 나가는 아들에게 했다는 말이에요.

페르시아 전쟁과 테르모필레

기원전 480년,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가 300명의 전사를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을 지켰어요. 페르시아 대군을 사흘간 막았어요. 배신자의 밀고로 포위당해 전원 전사했어요.

이 전투가 그리스 전체를 저항으로 불태웠어요. 영화와 소설에서 지금도 영웅담으로 다뤄요. 하지만 동시에 수만 명의 헬로트와 동맹군도 싸웠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아요.

스파르타의 쇠락

기원전 371년, 테베와의 레욱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가 패배했어요. 신성대를 이끈 에파미논다스의 사선진(斜線陣) 전술에 완전히 무너졌어요. 스파르타 전사 400명이 전사했어요. 전사 집단이 너무 줄어들었어요.

스파르타의 근본 문제는 인구였어요. 극단적 출생 선별과 전쟁 손실로 스파르타 시민 수가 계속 줄었어요. 기원전 5세기에 8,000명이었던 시민이 기원전 4세기에는 2,000명으로 줄었어요. 강함을 추구하다 사라진 역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