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황제

기원전 221년, 진왕 영정이 마지막 남은 제(齊)나라를 정복했어요. 춘추전국시대 500년의 혼란이 끝났어요. 영정은 “삼황(三皇)의 황(皇)과 오제(五帝)의 제(帝)를 합쳐 황제라 하겠다”고 선언했어요. “황제”라는 칭호가 역사상 처음 등장한 순간이에요.

통일의 과정

진나라는 전국시대 7웅(秦·楚·齊·燕·趙·魏·韓) 중 하나였어요. 상앙의 법가적 개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만들었어요. 상벌이 분명하고 군사력이 강했어요.

영정(훗날 진시황)은 13세에 왕위에 올랐어요. 22세에 직접 통치를 시작해 기원전 230년부터 본격적으로 6개국 정복을 시작했어요. 한→조→위→초→연→제 순서로 하나씩 무너뜨렸어요. 10년 만에 통일을 완성했어요.

통일 이후 – 제국의 설계

진시황은 통일 이후 제국을 설계했어요. 단순히 전쟁에서 이긴 게 아니라 “하나의 나라”를 만들려 했어요.

도량형 통일: 길이·무게·부피의 기준을 통일했어요. 각 나라마다 달랐던 측량 기준을 하나로 맞췄어요.

문자 통일: 소전(小篆)이라는 통일 문자를 제정했어요. 이것이 한자 통일의 기원이에요.

도로 통일: 수도 함양에서 각지로 뻗는 도로망을 만들었어요. 수레바퀴 폭도 통일했어요.

군현제: 전국을 36개 군으로 나누고 황제가 임명한 관리를 보냈어요. 봉건 제후 체제를 없애고 중앙집권을 강화했어요. 이 군현제는 이후 2,000년 중국 행정의 기본이 됐어요.

만리장성 – 북방 방어선

진시황이 오늘날 가장 많이 알려진 이유 중 하나가 만리장성이에요. 흉노족의 남하를 막기 위해 기존 성벽들을 연결하고 확장했어요. 수십만 명의 병사와 인부가 동원됐어요. 혹독한 공사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현재 많이 보이는 만리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때 지은 것이에요. 진시황의 장성은 흙으로 만든 것이 많아 대부분 사라졌어요.

아방궁과 지하 군단

진시황은 수도 함양 주변에 아방궁을 지었어요. 규모가 너무 커서 완성을 보지 못했어요. 시황제 능(여산릉)에는 병마용(兵馬俑) – 흙으로 만든 병사와 말 – 8,000여 개가 지하에 배치됐어요. 1974년 발굴된 이 유물들은 지금도 세계 최대 고고학 발견 중 하나로 꼽혀요.

분서갱유와 사망

진시황은 사상 통제도 강력히 했어요. 기원전 213년 법가 이외의 책을 불태우게 했어요(분서). 이듬해 방술가(불로장생 연구자)들을 비판한 유학자 460명을 생매장했어요(갱유).

불로불사를 추구한 진시황은 수은이 들어간 약을 복용했어요. 기원전 210년, 순행 중에 죽었어요. 49세였어요. 그가 죽고 3년 만에 진나라도 멸망했어요. 거대한 제국이 허망하게 사라졌어요. 하지만 그가 만든 통일의 틀은 이후 2,000년 중국 역사의 기반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