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은 어떻게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위협했나

로마가 카르타고를 이기기까지 100년이 넘게 걸렸어요. 포에니전쟁 3차(264-146 BC)는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두 강국의 사활을 건 싸움이었어요. 그 중심에 한니발이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술가 중 한 명이 있었어요.

1차 포에니전쟁 – 시칠리아 쟁탈

기원전 264년, 로마와 카르타고의 첫 충돌은 시칠리아에서 일어났어요. 당시 카르타고는 서부 지중해 최강 해군을 가진 상업 도시국가였어요.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육군 강국이었어요.

23년 전쟁 끝에 로마가 이겼어요. 카르타고는 시칠리아를 잃고 막대한 배상금을 내야 했어요. 이 굴욕이 2차 전쟁의 씨앗이 됐어요.

한니발 – 아버지의 복수를 맹세한 아이

카르타고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는 1차 전쟁 패배 후 스페인에서 새 세력을 키웠어요. 아홉 살 아들 한니발이 아버지에게 스페인 원정에 따라가게 해달라고 졸랐어요. 하밀카르는 “로마에 복수를 맹세하면 데려가겠다”고 했어요. 한니발은 신전에서 로마에 영원히 적대하겠다고 맹세했어요.

성인이 된 한니발은 카르타고 최고 사령관이 됐어요. 기원전 218년, 그는 전쟁을 선택했어요.

알프스 도하 – 역사상 가장 대담한 행군

한니발의 계획은 해상 루트를 피해 육로로 이탈리아를 침공하는 것이었어요. 스페인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고, 골(갈리아, 지금의 프랑스)을 가로질러 알프스를 넘는 루트였어요.

병력 5만 명, 기병 9,000명, 전투 코끼리 37마리를 이끌고 알프스에 도전했어요. 혹한, 눈사태, 길 잃음으로 수천 명이 죽었어요. 알프스를 넘었을 때 보병은 2만 명, 기병은 6,000명으로 줄어 있었어요.

칸나에 전투 – 역사상 가장 완벽한 포위섬멸

이탈리아에 내려온 한니발은 연전연승했어요. 트레비아 강 전투(218 BC),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217 BC)에서 로마군을 대파했어요.

2차 포에니전쟁의 절정은 기원전 216년 칸나에 전투였어요. 로마는 8만 명의 대군을 동원했어요. 한니발은 4만~5만 명이었어요.

한니발은 마라톤 전투와 정반대 전술을 썼어요. 중앙에 약한 부대를 두고 일부러 뒤로 물러나게 해 로마군이 중앙으로 돌진하게 유인했어요. 그 사이 강한 양 날개가 로마군을 포위했어요. 하루 만에 로마군 5만~7만 명이 전멸했어요. 역사상 단일 전투 사망자로 손꼽히는 수치예요.

왜 로마를 멸망시키지 못했나

칸나에 이후 한니발은 16년간 이탈리아 반도를 누볐어요. 그런데 로마 본성을 직접 공격하지 않았어요. 공성 장비가 없었고, 카르타고 본국에서 지원이 끊긴 탓도 있었어요.

로마는 한니발과 직접 결전을 피하는 전략으로 버텼어요. 동맹 도시들을 지키고 한니발의 보급을 차단했어요. 결국 한니발은 이탈리아에서 16년을 버티다 철수할 수밖에 없었어요.

스키피오의 역공 – 자마 전투

로마의 젊은 장군 스키피오는 이탈리아를 포기하고 카르타고 본국(현 튀니지)을 직접 공격했어요. 한니발이 귀국해 맞섰지만,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졌어요. 한니발의 첫 패배였어요.

카르타고는 항복했어요. 그런데 로마의 카토는 매번 연설 끝에 “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한다(Carthago delenda est)”를 외쳤어요. 3차 포에니전쟁(149-146 BC) 끝에 카르타고는 완전히 파괴됐어요. 도시 자리에 소금이 뿌려졌어요(전설적으로). 로마가 지중해 세계의 단독 패권국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