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제국 – 타지마할은 어떻게 탄생했나

타지마할은 인류가 지은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로 꼽혀요. 새하얀 대리석, 완벽한 좌우 대칭, 황혼 빛에 물드는 돔. 이 건물은 사랑 이야기에서 탄생했어요. 인도를 300년 넘게 지배한 무굴제국의 황제가 죽은 아내를 기리기 위해 지었어요.

바부르 – 인도 정복

무굴제국의 시작은 바부르예요. 중앙아시아 티무르 왕조의 후예이자 칭기즈칸의 먼 후손인 바부르는 사마르칸트를 빼앗기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새 기회를 찾았어요.

1526년 바부르는 인도 북부로 진격했어요. 파니파트 전투에서 델리 술탄국을 격파하고 인도 북부를 장악했어요. 무굴(Mughal)이라는 이름은 몽골(Mongol)의 페르시아식 발음이에요.

그런데 바부르가 죽은 뒤 아들 후마윤이 아프가니스탄 세력에게 패해 16년간 망명 생활을 했어요. 무굴제국은 한 번 꺼질 뻔했어요.

악바르 대제 – 무굴의 전성기

후마윤의 아들 악바르(재위 1556-1605)가 제국을 진정한 강국으로 만들었어요. 악바르는 인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통치자 중 하나예요.

악바르는 무슬림이었지만 힌두교·이슬람교·자이나교 신자들을 동등하게 대했어요. 힌두 왕족 여성과 결혼하고, 힌두 귀족을 고위직에 임명했어요. 인두세(비이슬람 세금)를 폐지했어요. 이 관용 정책으로 인도 대부분이 안정됐어요.

악바르는 제국 전체에 통일된 행정 체계를 만들었어요. 토지 측량과 세금 제도를 정비했어요. 문맹이었지만 학문을 후원하고 토론을 즐겼어요. 악바르 치세에 무굴제국은 당시 세계 GDP의 25%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권이었어요.

샤자한과 타지마할

5대 황제 샤자한(재위 1628-1658)은 아내 뭄타즈 마할을 깊이 사랑했어요. 둘은 18년간 늘 함께했어요. 뭄타즈 마할은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1631년 세상을 떠났어요.

샤자한은 아내를 위해 무덤을 짓기로 했어요. 22년 공사, 2만 명의 장인이 동원됐어요. 중앙아시아의 흰 대리석, 청금석(아프가니스탄), 옥(중국), 산호(아라비아) 등 세계 각지에서 재료가 왔어요.

1648년 완성된 타지마할은 완벽한 대칭을 이뤄요. 중앙 돔을 중심으로 네 면이 똑같이 보여요. 햇빛 방향에 따라 흰 대리석 색이 달라 보여요. 새벽엔 분홍빛, 낮엔 순백, 저녁엔 황금빛이에요.

샤자한 자신도 나중에 타지마할 옆에 묻혔어요.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폐위당해 아그라 성에 갇혀 강 건너 타지마할을 바라보다 죽었어요.

아우랑제브 – 강경 통치와 쇠락

6대 황제 아우랑제브(재위 1658-1707)는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가두고 황제가 됐어요. 그는 경건한 이슬람 신자였어요. 악바르가 쌓은 관용 정책을 버렸어요. 힌두교 사원을 파괴하고 인두세를 부활시켰어요.

이 정책은 힌두교 세력의 반발을 샀어요. 마라타 왕국을 비롯한 힌두 세력들이 무굴에 저항했어요. 아우랑제브는 인도 남부 정복에 집착해 50년을 전쟁에 쏟아부었어요. 제국은 너무 넓어졌고 재정이 바닥났어요.

영국의 등장과 멸망

아우랑제브 사후 무굴제국은 급격히 약해졌어요. 지방 귀족들이 독립했어요. 이 혼란을 영국 동인도회사가 파고들었어요.

영국은 처음엔 무역 거점을 설치하다가 점차 군사력으로 인도를 잠식했어요. 1857년 세포이 항쟁(인도 용병들의 반란)이 진압된 뒤, 영국은 마지막 무굴 황제 바하두르 샤 2세를 버마(지금의 미얀마)로 유배 보냈어요. 무굴제국이 공식적으로 끝났어요.

무굴제국이 남긴 것들 – 타지마할, 페르시아-인도 융합 예술, 우르두어, 힌두-이슬람 문화의 교차점 – 은 지금도 인도와 파키스탄 곳곳에 살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