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 27년 감옥 끝에 대통령이 된 사람

1990년 2월 11일, 한 노인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빅터 버스터 교도소 문을 걸어 나왔어요. 27년 만의 자유였어요. 수십만 명이 그를 맞이했어요. 그가 넬슨 만델라예요. 4년 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어요.

아파르트헤이트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는 아프리칸스어로 “분리”를 뜻해요. 1948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법으로 강제된 인종 분리 정책이에요.

흑인·백인·인도계·혼혈인은 각각 다른 구역에서 살아야 했어요. 버스 좌석, 화장실, 해수욕장, 학교, 병원이 인종별로 분리됐어요. 흑인은 이동할 때 통행증(패스)을 항상 갖고 다녀야 했어요. 통행증 없이 돌아다니면 체포됐어요.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구의 80%가 흑인이었는데, 이들이 전체 토지의 13%에 모여 살도록 강요됐어요.

만델라의 저항

넬슨 만델라는 1918년 남아프리카 왕족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가 됐어요. 흑인 민권운동 단체 ANC(아프리카민족회의)에서 활동했어요.

처음에 만델라는 비폭력 저항을 택했어요. 그런데 1960년 샤프빌 학살 사건이 일어났어요. 경찰이 평화적 시위대에 총을 쏴 69명이 죽었어요. 만델라는 폭력도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ANC의 무장 조직 ‘민족의 창’을 결성해 폭파 활동을 시작했어요.

로벤 섬 – 27년

1962년 체포된 만델라는 1964년 종신형을 선고받았어요. 리보니아 재판에서 그는 최후 진술로 이렇게 말했어요: “민주주의와 자유 사회라는 이상을 위해 나는 살고 싶어요. 하지만 필요하다면 죽을 준비도 돼 있어요.”

만델라가 수감된 케이프타운 앞바다 로벤 섬은 바람이 강하고 추운 곳이었어요. 채석장 노동을 했어요. 가족 면회는 1년에 한 번, 편지는 6개월에 한 번이 허용됐어요.

국제 사회는 아파르트헤이트를 규탄하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경제 제재를 가했어요. 스포츠 보이콧도 이어졌어요. 세계 각국의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이 커졌어요.

석방과 협상

1989년 집권한 프레데리크 드클레르크는 이 상황이 지속될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만델라와 비밀 협상을 시작했어요. 1990년 2월, 만델라를 무조건 석방했어요.

만델라는 석방 후 복수나 보복을 외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협상을 택했어요. 만델라와 드클레르크는 1993년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1994년 – 민주주의 선거

1994년 4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사상 첫 민주 선거가 열렸어요. 흑인도 투표할 수 있는 첫 선거였어요. 긴 줄을 서서 투표하는 흑인 노인들의 사진이 전 세계로 퍼졌어요.

ANC가 압승했어요. 1994년 5월 10일,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어요. 76세였어요. 취임 연설에서 그는 화해와 용서를 강조했어요.

진실화해위원회

만델라 정부는 과거사 처리를 위해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들었어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잔학행위를 자백하면 사면해주는 방식이었어요. 처벌보다 화해를 선택한 거예요.

이 모델은 이후 세계 여러 나라가 참고하는 갈등 해소 방식이 됐어요. 만델라는 1999년 임기를 마치고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려놓았어요. 2013년 세상을 떠났어요. 그의 이야기는 인류가 용서와 화해로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준 살아있는 역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