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 – 노예해방 선언과 극장의 총성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에요. 가난한 통나무집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고, 남북전쟁을 이끌어 나라를 지키고 노예제를 폐지했어요. 그리고 그 승리를 겨우 5일 앞두고 암살당했어요.

1860년 – 분열의 시작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링컨이 당선됐어요. 링컨이 속한 공화당은 노예제의 새 지역 확산을 반대했어요. 남부 주들은 링컨 당선이 자신들의 노예 기반 경제를 위협한다고 봤어요.

남부 11개 주가 연방을 탈퇴해 아메리카 남부연합(Confederate States)을 만들었어요. 링컨은 연방 탈퇴는 헌법상 불법이라고 선언했어요. 1861년 4월, 남부 연합군이 연방 요새를 공격하면서 남북전쟁이 시작됐어요.

전쟁 초기 – 링컨의 딜레마

링컨의 공식 전쟁 목표는 처음에 “연방 수호”였어요. 노예제 폐지가 아니었어요. 노예 주이지만 연방에 남아있는 주들(켄터키·메릴랜드 등)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어요.

그런데 전쟁이 길어지면서 링컨의 생각이 바뀌었어요. 노예가 남부 경제와 군사 물자 공급의 핵심이었어요. 노예들이 해방된다면 남부의 전쟁 능력이 약해질 거예요. 또 영국·프랑스가 남부를 지원하려 했는데, 연방이 노예 해방을 내세우면 영국·프랑스가 남부 편을 들기 어려워질 거예요.

노예해방선언 – 1863년 1월 1일

1862년 9월, 앤티텀 전투에서 북군이 가까스로 승리했어요. 링컨은 이 승리를 계기로 예비 선언을 발표했어요. 그리고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선언을 정식 발표했어요.

선언의 핵심: “현재 미합중국에 반역 상태에 있는 주에서 노예로 있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자유다.”

단, 이 선언은 연방에 남아있는 주의 노예에는 적용되지 않았어요. 법적으로 온전한 노예제 폐지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이 선언으로 전쟁의 성격이 달라졌어요. 이제 남북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노예제를 둘러싼 도덕적 전쟁이 됐어요.

게티즈버그 연설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 전투 전사자 기념식에서 링컨은 짧은 연설을 했어요. 불과 272단어였어요. 그런데 이 연설이 역사에 남았어요.

“87년 전 우리 선조들은 자유 안에서 잉태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다는 명제를 실천하는 새로운 나라를 이 대륙에 세웠습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전쟁의 끝과 암살

1865년 4월 9일, 남부 연합의 리 장군이 항복했어요. 4년간의 전쟁에서 60만 명이 죽었어요. 링컨은 패배한 남부를 관대하게 대하려 했어요. 보복보다 화해를 원했어요.

5일 뒤인 4월 14일 밤, 링컨은 워싱턴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 중이었어요. 남부 지지자 배우 존 윌크스 부스가 대통령 박스석에 침입해 뒤에서 총을 쏘았어요. 링컨은 다음 날 아침 숨을 거뒀어요. 56세였어요.

수정헌법 13조

링컨이 죽던 해 12월, 미국 수정헌법 13조가 비준됐어요. “미국 내에서, 또는 미국의 관할하에 있는 어떤 곳에서도 노예제도나 자의적 노역은 존재할 수 없다.”

노예제가 헌법으로 완전히 폐지됐어요. 링컨이 살아서 그 순간을 보지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