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38선 전역에서 일제히 남침을 개시했어요.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됐어요. 그로부터 3년간 이어진 한국전쟁은 약 500만 명의 사망자와 수백만 명의 피란민을 낳았어요. 그러나 전쟁을 이해하려면 38선이 어떻게 그어졌는지부터 알아야 해요.
38선 – 하룻밤에 그어진 경계선
1945년 8월 10일 밤, 미국 국무부 딘 러스크(훗날 국무장관)와 찰스 본스틸 대령이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펴놓고 한반도를 둘로 나누는 선을 그었어요. 기준은 북위 38도선이었어요. 미군은 남쪽, 소련군은 북쪽에서 일본군 무장해제를 맡는 분할 점령 경계선이었어요. 한국인과 협의 없이, 30분도 안 걸린 결정이었어요.
문제는 이 임시 경계선이 고착됐다는 거예요. 미소 냉전이 심화되면서 1948년 남쪽에는 대한민국,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각각 수립됐어요. 임시 경계선이 두 국가의 국경이 된 셈이었어요.
전쟁의 시작과 국제전으로의 확대
북한군은 소련제 T-34 전차를 앞세워 빠르게 남진했어요. 낙동강 일대까지 밀린 유엔군(사실상 미군 중심)은 9월 인천 상륙 작전으로 반격에 나섰어요.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이 작전은 전세를 역전시켰어요.
10월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압록강 근처까지 북진하자 중국 인민지원군이 개입했어요. 다시 전선이 밀렸고, 전쟁은 38선 부근에서 교착 상태에 빠졌어요. 이후 2년 가까이 협상과 전투가 반복됐어요.
정전과 분단의 고착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됐어요. 교전을 멈추는 협정이었어요. 평화조약이 아니었어요. 한국전쟁은 공식적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정전선은 38선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 않았어요. 3년 전쟁 끝에 서해 쪽에서는 남쪽으로, 동해 쪽에서는 북쪽으로 조금 달라진 선이 됐어요. 이 선이 오늘날 비무장지대(DMZ)가 됐어요.
전쟁이 남긴 것
한국전쟁은 강대국들의 대리전이기도 했어요. 미국·영국을 비롯한 유엔 16개국이 참전했고, 중국 인민지원군이 북한을 지원했어요. 소련은 직접 참전하지 않았지만 무기와 고문단을 보냈어요. 한반도 사람들이 강대국들의 체스판 위에서 싸운 전쟁이었어요.
전쟁 후 한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어요. 이후 수십 년 동안 이룬 경제 성장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이유예요. 분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