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조선이 건국됐어요. 고려가 무려 474년 만에 무너진 거예요. 그런데 이 역성혁명이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쿠데타는 아니었어요.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린 하나의 결정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역사를 바꿨어요.
위화도 회군 – 1388년
14세기 말 고려는 안팎으로 위기였어요. 원나라가 물러나고 명나라가 들어서는 혼란기에, 명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 일부를 요구해 왔어요. 당시 권력자 최영은 요동 정벌로 맞서자고 주장했어요. 이성계는 반대했어요. “소국이 대국을 치는 건 불가하다”며 네 가지 이유(사불가론)를 내세웠어요.
결국 이성계는 요동 원정군을 이끌고 북상했지만, 압록강 위화도에서 멈췄어요. 홍수로 강을 건너기 어렵다는 이유를 댔지만, 실제로는 회군을 결심한 거예요.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진격했고,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위했어요.
정도전 – 조선의 설계자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잡은 이성계 뒤에는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있었어요. 성리학자이자 뛰어난 행정가였던 정도전은 고려 체제 자체를 갈아엎어야 한다고 믿었어요.
정도전은 토지 개혁(과전법)을 주도했어요. 고려 귀족들이 사점하고 있던 토지를 국가가 회수해 재분배했어요. 이 한 방으로 고려 귀족의 경제적 기반이 흔들렸어요. 신진사대부(새로운 유학자 관료들)가 이 개혁을 지지하면서 이성계의 정치적 기반이 됐어요.
공양왕 폐위와 조선 개창
마지막 고려 왕 공양왕이 폐위되고, 1392년 7월 이성계가 새 나라의 왕으로 즉위했어요. 나라 이름 “조선”은 명나라의 승인을 받아 확정됐어요. 고조선의 이름을 되살린 거예요.
수도는 처음에 고려의 개경이었다가 1394년 한양(지금의 서울)으로 옮겼어요. 한양은 풍수지리상 좋은 자리인 데다, 고려 구세력의 본거지인 개경을 벗어난다는 정치적 의미도 있었어요.
왕자의 난 – 권력의 대가
조선 건국 직후 이성계의 아들들 사이에 권력 다툼이 벌어졌어요.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1398년 정도전과 세자를 제거했어요(1차 왕자의 난). 이방원은 형 이방간과의 2차 왕자의 난도 이겨냈고, 결국 3대 왕 태종으로 즉위했어요.
정작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은 이방원의 손에 죽었어요. 이성계는 왕위에서 물러나 불교에 귀의했고, 아들과 화해하지 못한 채 죽었어요. 역성혁명의 영웅이 맞은 쓸쓸한 말년이었어요.
유교 국가의 틀
조선이 고려와 근본적으로 달랐던 점은 불교 대신 성리학(유교)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는 거예요. 사찰은 도성 밖으로 밀려났고, 유학자들이 관료 체계를 장악했어요. 과거제를 통해 신분보다 학문으로 출세하는 길이 열렸어요.
이 체계는 1392년부터 1897년까지 500년 넘게 이어졌어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라는 하나의 결단이 500년 역사의 문을 연 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