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20일, 미국과 영국이 이끄는 연합군이 이라크를 침공했어요. 이유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21일 만에 바그다드가 함락됐어요. 사담 후세인이 도망쳤어요. 그런데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어요.
9.11 이후 분위기
이라크 전쟁은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 맥락에서 시작됐어요.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어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2003년 2월 유엔 안보리에서 이라크 WMD 증거를 제시했어요. 위성사진, 통화 녹음, 화학무기 시설 주장이었어요. 나중에 이 증거들이 대부분 잘못됐거나 조작됐음이 드러났어요. 파월은 이것이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큰 오점이라고 나중에 말했어요.
유엔 안보리가 이라크 침공을 승인하지 않았어요. 프랑스가 거부권을 행사했어요. 미국은 “의지 있는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구성했어요. 영국이 핵심 파트너였어요.
3주 만에 무너진 바그다드
2003년 3월 20일 공습이 시작됐어요.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작전으로 이라크 군사 시설을 집중 폭격했어요.
3주 뒤 4월 9일 바그다드 타흐리르 광장에서 사담 동상이 무너졌어요. TV로 중계됐어요. 미군이 참가했어요. 이라크 전쟁이 끝난 것처럼 보였어요.
부시는 5월 1일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 위에서 “임무 완수”를 선언했어요. “이라크에서 주요 전투 작전 종료”였어요.
그 다음이 문제였다
사담 정권 붕괴 후 이라크는 혼란에 빠졌어요. 수십 년 독재 아래 억눌려 있던 종파·민족 갈등이 폭발했어요. 수니파·시아파·쿠르드족의 분쟁이에요.
“탈바트당화” 정책으로 사담 시절 공무원·군인들이 대거 해고됐어요. 이 사람들이 반군에 합류했어요.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가 세력을 키웠어요. 이라크 수렁에서 AQI가 훗날 IS(이슬람 국가)로 발전했어요.
2006-2007년이 가장 혼란스러웠어요. 수니-시아 종파 학살, 폭탄 테러, 연합군 사상자가 폭증했어요.
사담 후세인의 최후
사담은 2003년 12월 13일 고향 근처 지하 은신처에서 체포됐어요. 초라한 모습이었어요. 이라크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어요. 1982년 두자일 학살(시아파 마을 주민 148명 처형)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어요. 2006년 12월 30일 교수형에 처해졌어요.
전쟁의 결산
미군이 완전 철수한 건 2011년이에요. 하지만 IS 격퇴를 위해 2014년 다시 병력이 들어갔어요. 2021년까지 작전이 이어졌어요.
미군 사망자 4,500명 이상.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는 추정 방법마다 다르지만 수십만 명에 달해요. 전쟁 비용은 2조 달러 이상으로 추산돼요.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어요. 이라크 전쟁은 21세기 최대의 전략적 실책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