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2년 11월 16일, 페루 카하마르카. 스페인 탐험가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168명이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와 그 호위대 8만 명과 맞닥뜨렸어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싸움이었어요. 그러나 그날 저녁, 잉카 황제는 스페인인들의 포로가 됐어요.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전성기의 잉카 제국
잉카 제국은 15세기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급성장한 남아메리카 최대 제국이에요. 현재 페루·볼리비아·에콰도르·칠레·아르헨티나 북부에 걸쳐 인구 약 1200만 명이 살았어요. 수도 쿠스코에서 길이 4만 킬로미터가 넘는 도로망이 뻗어 있었어요. 안데스의 가파른 지형에 대규모 농업 테라스를 만들고, 역참 시스템으로 빠르게 정보를 전달했어요.
문자는 없었지만 키푸(quipu)라는 끈 매듭 기록 시스템을 사용했어요. 고도의 석조 건축 기술로 쿠스코·마추픽추 같은 도시를 건설했어요.
내분과 전염병
스페인인이 도착하기 전 잉카 제국은 이미 위기였어요. 전 황제 와이나 카팍이 천연두로 갑작스럽게 사망했어요. 천연두는 스페인인이 카리브해에 도착한 후 퍼진 유럽 질병이었어요. 잉카인은 면역이 없었어요.
황제 사망 후 두 아들이 왕위를 다퉜어요. 아타우알파와 그 형 와스카르의 내전이 벌어졌어요. 피사로가 도착한 시점은 아타우알파가 막 내전에서 이긴 직후였어요. 제국은 분열된 상태였어요.
카하마르카의 기습
피사로는 아타우알파에게 화친 회담을 제안했어요. 아타우알파는 경호원 수천 명과 함께 광장에 나타났어요. 그러나 무기는 없었어요. 스페인 신부가 성경을 건네며 복종을 요구했어요. 아타우알파가 성경을 떨어뜨리는 순간, 스페인 군이 총·대포·기마로 기습했어요.
잉카군은 총과 말을 본 적이 없었어요. 화약 총성과 기마병에 공황 상태가 됐어요. 스페인인 168명이 잉카 호위대 수천 명을 학살했어요. 아타우알파는 생포됐어요.
황금 방과 멸망
아타우알파는 몸값으로 방 하나를 금으로 채우고, 방 두 개를 은으로 채우겠다고 제안했어요. 실제로 이행됐어요. 황금 수십 톤이 쌓였어요. 피사로는 약속을 어기고 아타우알파를 처형했어요.
이후 스페인은 잉카 영토 전체를 점령했어요. 천연두 등 전염병으로 원주민 인구가 급감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어요. 16세기 동안 안데스 지역 인구는 90% 이상 감소했다는 추정도 있어요. 잉카 문명은 멸망했고, 수백 년에 걸쳐 쌓인 황금과 문화유산이 스페인으로 흘러들어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