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독립 국가를 세운 사례가 있을까요? 딱 하나 있어요. 아이티예요. 1791년부터 1804년까지 13년 전쟁 끝에 노예들이 프랑스 식민지를 독립 국가로 만들었어요.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에요.
생도맹그 – 프랑스 최고의 식민지
18세기 생도맹그(지금의 아이티)는 프랑스 식민지였어요. 히스파니올라 섬 서쪽 절반이에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이익이 많이 나는 식민지 중 하나였어요.
설탕·커피·코코아를 유럽에 수출했어요. 이 생산물은 노예 노동으로 만들어졌어요. 노예 50만 명이 일했어요. 백인 지주 3만 명, 자유 유색인(혼혈·자유흑인) 3만 명, 노예 50만 명의 구조였어요.
노예 대우는 극도로 잔혹했어요. 평균 수명이 짧았어요. 아프리카에서 계속 새 노예를 들여오지 않으면 인구가 유지되지 않을 정도였어요.
부알루 세레모니와 반란의 시작
1791년 8월 14일 밤, 부알루 숲에서 비밀 의식이 열렸어요. 두티 부크만이라는 노예 지도자와 사제가 부두교 의식을 치렀어요. 반란의 신호였어요.
8월 22일 노예 반란이 시작됐어요. 일주일 만에 1000개 이상의 농장이 불탔어요. 1800명의 백인이 죽었어요.
투생 루베르튀르
이 혼란 속에서 걸출한 지도자가 등장했어요. 투생 루베르튀르(1743-1803)예요. 노예 출신이었지만 농장 관리인으로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어요.
전술·정치·외교에 뛰어났어요. 프랑스·스페인·영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어요. 1794년 프랑스 혁명 정부가 노예제 폐지를 선언하자 프랑스 편으로 돌아서 영국군과 스페인군을 내쫓았어요.
1801년 투생이 헌법을 선포하고 자신을 종신 총독으로 선언했어요. 사실상 독립이었어요.
나폴레옹의 복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생도맹그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어요. 1802년 처남 르클레르가 이끄는 원정대 4만 명을 보냈어요.
투생은 협상 제안에 응했다가 체포됐어요. 프랑스 산중 요새에 감금됐어요. 1803년 거기서 죽었어요.
하지만 반란은 계속됐어요. 데살린·크리스토프 등 새 지도자들이 싸웠어요. 황열병이 프랑스 군대를 쓸었어요. 르클레르도 황열병으로 죽었어요. 4만 명이 거의 전멸했어요.
1804년 독립
1804년 1월 1일, 장자크 데살린이 독립을 선언했어요. 나라 이름을 생도맹그에서 “아이티(Haiti, 원주민 타이노어로 ‘산이 많은 땅’)”로 바꿨어요.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에요.
프랑스는 아이티 독립을 인정하는 대신 현재 가치로 수십억 달러에 해당하는 배상금을 요구했어요. 1825년 아이티가 이를 수용했어요. 이 빚을 다 갚은 건 1947년이에요. 독립 이후 143년간 빚을 지고 있었어요.
아이티 혁명은 미국·프랑스 혁명과 함께 18세기 세 대혁명 중 하나예요. “자유·평등·박애”가 노예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