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 세계 경제를 멈춘 10년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뉴욕 월스트리트 주식시장이 폭락했어요. 이 날은 ‘검은 목요일’로 불려요. 나흘 뒤 ‘검은 화요일’에 추가 폭락이 이어졌어요.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이어진 대공황은 역사상 가장 깊고 오래 지속된 경제 불황이었어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전체가 흔들린 사건이었어요.

왜 주식이 폭락했나

1920년대 미국은 호황이었어요. 자동차·라디오·냉장고 같은 소비재가 대량 보급됐고, 주식시장은 10년 동안 계속 올랐어요. 너도나도 주식을 샀어요. 문제는 방식이었어요. 당시에는 주식 가격의 10%만 내고 나머지는 빌려서 주식을 살 수 있었어요. 마진(신용) 거래였어요.

이렇게 빚으로 산 주식이 폭락하자 투자자들은 빚을 갚기 위해 주식을 더 팔았어요. 매도가 매도를 불렀어요. 1929년 9월 최고점 대비 1932년 주가는 약 89% 하락했어요.

은행이 무너졌어요

주식 폭락은 곧 은행 위기로 이어졌어요. 투자자들이 예금을 인출하려 몰려들었어요. 은행들은 대출금을 회수하려 했고, 기업들은 자금이 말랐어요. 은행이 하나 문을 닫으면 예금자들의 공포가 커지고, 다른 은행에도 인출 러시가 이어졌어요. 1930년부터 1933년 사이 미국에서 9000개 이상의 은행이 문을 닫았어요.

당시 미국에는 예금보험 제도가 없었어요. 은행이 망하면 예금자는 저축을 모두 잃었어요. 평생 모은 돈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어요.

실업과 빈곤이 미국을 덮었어요

기업들이 자금 부족으로 생산을 줄이자 대규모 해고가 이어졌어요. 1933년 미국 실업률은 25%에 달했어요. 4명 중 1명이 일자리가 없었어요. 도시 곳곳에 빵을 배급받으려는 실업자 줄이 늘어섰어요.

농촌도 마찬가지였어요. 작물 가격이 폭락하면서 빚을 갚지 못한 농부들이 땅을 잃었어요. 1930년대 중반에는 대초원(더스트볼) 지역에 대규모 가뭄이 겹쳤어요. 수십만 명의 농가가 땅을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어요.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해요.

세계로 번졌어요

대공황은 미국에 그치지 않았어요. 미국이 해외 대출을 회수하고 수입 관세를 높이자 유럽 경제도 타격을 받았어요. 독일은 특히 심했어요. 배르사유 조약 배상금을 갚기 위해 미국 자본에 의존하던 독일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어요. 실업률이 30%에 달했어요. 이 경제 위기가 히틀러 나치당 부상의 직접적 배경이 됐어요.

뉴딜과 교훈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3년부터 추진한 뉴딜 정책은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는 방향이었어요. 공공사업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예금보험을 도입하고, 금융 규제를 강화했어요. 대공황이 완전히 끝난 건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군수 생산이 폭발한 1940년대였어요. 대공황의 교훈은 오늘날 각국 중앙은행과 금융 규제 체계의 기반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