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미사일 위기 – 핵전쟁 직전 13일

1962년 10월 16일, 미국 CIA 분석가가 항공 촬영 사진을 케네디 대통령에게 제시했어요. 쿠바 섬에 소련 핵미사일 발사대가 건설되고 있다는 증거였어요.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두는 핵미사일이 90마일(145km) 앞바다에 배치되고 있었어요. 이후 13일, 인류 역사상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간 시간이었어요.

쿠바에 미사일이 간 이유

발단은 1961년 피그만 침공 실패와 미국이 터키에 배치한 주피터 핵미사일이에요. 소련 지도자 흐루쇼프는 미국 코앞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해 균형을 맞추려 했어요.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도 미국의 또 다른 침공을 막기 위해 소련 핵미사일 배치를 받아들였어요.

8월부터 소련 선박들이 쿠바에 장비를 운반했어요. 10월 중순 미국 정찰기가 이를 확인했어요.

케네디의 13일

케네디는 비밀리에 ExComm(국가안보위원회 집행위원회)을 구성했어요. 공군은 즉각 공습을 주장했어요. 해군은 해상 봉쇄를 제안했어요. 외교 협상파도 있었어요.

10월 22일 케네디는 TV 연설로 사태를 공개했어요.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고 있으며, 미국은 해상 봉쇄에 나선다”고 선언했어요. 동시에 소련 선박이 봉쇄선을 넘으면 군사력을 쓰겠다고 경고했어요.

소련 선박 여러 척이 쿠바를 향해 항진 중이었어요. 충돌이 임박해 보였어요.

핵전쟁을 막은 협상

물밑 외교가 진행됐어요. 흐루쇼프는 두 통의 편지를 보냈어요. 첫 편지는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조건으로 미사일을 철수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둘째 편지는 터키의 미국 미사일 철수도 요구했어요.

케네디의 비밀 채널을 통해 협상이 이뤄졌어요. 미국은 쿠바 불침공을 약속하고,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터키 미사일도 6개월 내 철수하기로 했어요. 흐루쇼프가 이를 수락했어요. 소련 선박들이 돌아섰어요.

세상이 몰랐던 순간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 있어요. 당시 쿠바 근해에 있던 소련 잠수함 B-59는 미 해군 폭뢰 공격을 받고 핵어뢰 발사 명령을 내리려 했어요. 함장과 정치장교는 찬성했어요. 그러나 세 번째 서명이 필요한 부함장 바실리 아르히포프가 거부했어요. 핵전쟁을 막은 한 사람이었어요.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소 직통 전화(핫라인)가 설치됐고, 핵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 협상이 본격화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