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별 달린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의 얼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재생산되는 이미지 중 하나예요. 티셔츠, 포스터, 머그컵 – 그런데 실제 체 게바라는 누구였을까요? 혁명가이자 처형자이자 이상주의자였어요.
에르네스토 게바라 – 의사의 길에서 혁명으로
에르네스토 게바라(1928-1967)는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태어났어요. 중산층 집안이었어요. 의과대학을 다니던 23살에 오토바이 여행을 했어요. 칠레·페루·콜롬비아·베네수엘라를 돌았어요(나중에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로 만들어졌어요).
나환자 캠프, 광산 노동자, 빈민 생활을 목격했어요. 라틴아메리카의 불평등과 미국 자본의 착취를 봤어요. 의사보다 혁명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굳혔어요.
쿠바 혁명 (1956-1959)
1955년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어요. 의기투합했어요. 1956년 82명이 그란마 호를 타고 쿠바에 상륙했어요. 처음엔 거의 전멸했어요. 살아남은 20명이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악 지대로 도망쳤어요.
게바라는 군사 전술에 뛰어났어요. 또 야전 의사였어요. 점점 부대가 커졌어요. 3년 게릴라 전쟁 끝에 1959년 1월 1일 아바나를 점령했어요. 바티스타 독재 정권이 무너졌어요.
혁명 후 게바라는 산업부 장관, 쿠바 국립은행장을 맡았어요. 쿠바를 설탕 단작 경제에서 산업화하려 했어요.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혁명의 어두운 면
게바라는 혁명 직후 라 카바냐 요새에서 “혁명 재판소”를 이끌었어요. 이 재판소에서 수백 명이 처형됐어요. 바티스타 정권 협력자들이었지만 재판 과정은 신속하고 불투명했어요.
게바라는 “혁명 전쟁에서 총살형은 필요악”이라는 입장이었어요. 이 부분은 그를 이상화하는 사람들이 외면하는 역사예요.
아프리카와 볼리비아
1965년 게바라가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어요. 카스트로에게 작별 편지를 남기고 콩고(현 DR콩고)로 갔어요. 혁명 전파가 목적이었어요. 실패했어요.
1966년 볼리비아로 갔어요. 농민들이 게릴라에 호응할 거라 기대했어요. 그러지 않았어요. CIA의 지원을 받는 볼리비아 정부군이 추적했어요.
1967년 10월 8일 게바라가 포로로 잡혔어요. 다음 날 10월 9일 처형됐어요. 39살이었어요.
아이콘이 된 이유
“게릴레로 에로이코(영웅적 게릴라전사)” – 그의 사진은 1960년 쿠바 집회에서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었어요. 그 사진이 포스터가 되고, 전 세계 반전·반자본 운동의 상징이 됐어요.
게바라의 이상주의와 죽음이 그를 신화로 만들었어요. 살아 있었다면 볼리비아 실패 후 비판을 받았을 거예요. 죽음이 그를 영원한 혁명가로 고정시켰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얼굴이 찍힌 티셔츠는 자본주의 상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