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왜 하루아침에 무너졌나

기원전 18년에 건국된 백제는 700년 가까이 존속한 나라예요. 그런데 660년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오자 불과 20여 일 만에 수도 사비성이 함락됐어요. 계백의 5,000 결사대도, 의자왕의 항복도 – 그 마지막 장면은 생각보다 훨씬 빠른 붕괴였어요.

백제의 전성기 – 근초고왕

4세기 근초고왕(재위 346-375) 시대가 백제의 절정이었어요. 한반도 남부 대부분을 장악하고 북으로 고구려를 압박했어요.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도 했어요. 바다 건너 일본(왜)과도 교류했어요. 칠지도(일본 이소노카미 신궁 소장 칼)가 이 시기의 유물이에요.

또한 중국 동진과 교류하며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어요. 불교도 이 시기 공식 수용했어요(384년). 일본에 불교와 한자·유학을 전해준 것도 백제예요.

위기 – 수도를 두 번 옮기다

5세기 들어 고구려 장수왕이 남하 정책을 폈어요. 475년 장수왕이 3만 대군으로 한성(지금의 서울)을 공격했어요. 개로왕이 전사했어요. 백제는 한강 유역 전부를 잃고 수도를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옮겼어요.

그 뒤 538년 다시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했어요. 수도를 두 번 옮기면서 나라가 흔들렸어요. 반면 이 시기 일본과의 교류는 더 깊어졌어요. 백제의 예술·건축이 일본 아스카 문화의 토대가 됐어요.

의자왕과 내부 붕괴

641년 즉위한 의자왕은 초반엔 유능한 왕이었어요. 신라를 거세게 압박해 40여 개 성을 빼앗았어요. 대야성 전투에서 신라 장군을 죽이고 김춘추의 딸과 사위를 사망케 했어요. 이 사건이 김춘추가 당나라와 손잡는 결정적 계기가 됐어요.

의자왕 말년엔 간신들이 권력을 잡고 충신들이 밀려났어요. 성충·흥수 같은 신하들이 나당연합을 경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의자왕이 밤마다 3,000 궁녀와 놀았다”는 기록은 신라·당나라 쪽 사료여서 과장이 있지만, 말기 국정이 흐트러진 건 분명해요.

황산벌 – 계백의 마지막

660년 나당연합군이 동시에 공격했어요. 당나라 소정방이 바다로, 신라 김유신이 육로로 왔어요. 백제는 황산벌에서 계백이 5,000명의 결사대로 막아섰어요. 신라군 5만 명을 상대했어요.

계백은 싸우러 나가기 전 자기 처자식을 직접 죽였어요. “살아서 노예가 되느니 죽는 게 낫다”고 했어요. 황산벌에서 네 번 싸워 네 번 이겼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전멸했어요.

사비성은 쉽게 무너졌어요. 의자왕은 웅진으로 도망쳤다가 항복했어요. 당나라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었어요.

백제 부흥 운동

백제가 항복했다고 저항이 끝난 건 아니었어요. 복신과 도침이 주류성에서 부흥 운동을 일으켰어요. 일본에서 왕자 풍(豊)을 데려와 왕으로 세웠어요. 일본도 수군을 보내 지원했어요.

663년 백강 전투에서 백제·왜 연합군이 당나라·신라 연합군에 패배했어요. 부흥 운동은 끝났어요. 백제는 완전히 역사에서 사라졌어요.

오늘날 충남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 자리예요. 국립부여박물관에 가면 금동대향로 등 백제 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