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 – 로마 제국의 첫 황제

기원전 27년, 로마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바쳤어요. 이날부터 로마는 공화국이 아닌 제국이 됐어요. 공식적으로는 공화정 체제를 유지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가진 체제가 시작됐어요.

카이사르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의 원래 이름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예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카뻘로 카이사르에게 입양돼 후계자가 됐어요. 카이사르가 암살됐을 때 18살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비해 정치 감각이 뛰어났어요. 카이사르의 심복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와 손잡아 제2차 삼두정치를 이뤘어요.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격파했어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로 도망쳐 자살했어요.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가 됐어요.

“나는 황제가 아니다”

옥타비아누스의 가장 영리한 선택은 황제를 자처하지 않은 거예요. 카이사르가 독재자처럼 굴다 암살당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 했어요.

원로원에서 권력을 자발적으로 반납하는 척했어요. 원로원은 그에게 권력을 다시 돌려줬어요. 이 과정을 반복하며 호민관 권한, 집정관 권한, 군 최고사령관 권한을 하나씩 합법적으로 손에 넣었어요.

칭호도 신중하게 골랐어요. “아우구스투스”, “프린켑스(제1 시민)”, “임페라토르(개선장군)” – 왕이나 황제 같은 직접적 칭호는 피했어요.

팍스 로마나의 시작

아우구스투스 치세(기원전 27-기원후 14)는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의 시작이에요. 200년간 이어진 로마의 전성기예요.

내전이 끝나고 지중해 세계에 평화가 왔어요. 상업이 활성화됐어요. 아우구스투스는 공공건물을 대거 지었어요. “나는 벽돌 도시를 물려받아 대리석 도시를 남긴다”고 했어요.

문학도 꽃을 피웠어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호라티우스·오비디우스의 시가 이 시대에 나왔어요. 아우구스투스가 후원했어요.

후계 문제와 말년

아우구스투스의 가장 큰 고민은 후계자 문제였어요. 아들이 없었어요. 딸 율리아를 여러 사람과 결혼시켰지만 남편들이 잇따라 먼저 죽었어요. 결국 아내 리비아의 전 남편 아들 티베리우스를 후계자로 정했어요.

기원후 14년, 아우구스투스가 76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임종 자리에서 “나는 역할을 잘 수행했나? 그렇다면 박수를 쳐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티베리우스가 2대 황제가 됐어요. 아우구스투스가 만든 제정 체제는 이후 400년 이상 이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