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오스만 제국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어요. 오스만 정부가 아르메니아인들을 시리아 사막으로 강제 이주시키기 시작했어요. 이 과정에서 100만 명 이상이 죽었어요. 20세기 최초의 집단 학살(제노사이드)이에요.
오스만의 아르메니아인
아르메니아인은 기독교를 믿는 민족으로 오스만 제국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에 오래전부터 살았어요. 오스만의 공식 종교는 이슬람이었지만, 제국 내 기독교 소수민족들은 별도 밀레트(공동체) 제도 아래 보호됐어요.
19세기 말 오스만이 약해지면서 민족 갈등이 심해졌어요. 1895-1896년 이미 대규모 아르메니아인 학살이 있었어요(하미디예 학살, 사망자 수만 명). 1909년에도 학살이 있었어요.
1차 세계대전과 ‘청년 투르크당’
1908년 오스만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어요. 민족주의 성향의 청년 투르크당이 권력을 장악했어요. 이들은 “투란주의(모든 투르크 민족의 통합)”를 꿈꿨어요.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오스만은 독일 편에 섰어요.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와 싸우다 대패했어요. 청년 투르크당 지도부는 이 패배를 아르메니아인 탓으로 돌렸어요. 아르메니아인이 러시아 편에서 첩자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어요.
1915년 – 학살의 시작
1915년 4월 24일, 콘스탄티노플의 아르메니아 지식인·지도자 235명이 체포돼 처형됐어요. 이 날이 아르메니아 집단 학살 추모일이에요.
이후 동부 아나톨리아 전역에서 아르메니아인 남성들이 처형됐어요. 여성·어린이·노인은 시리아 사막으로 강제 이주됐어요. 죽음의 행진이었어요. 음식도, 물도 없이 수백km를 걷게 했어요. 도중에 학살도 이뤄졌어요.
외국 기자들과 외교관들이 목격담을 남겼어요. 독일 외교관들도 동맹국인 오스만의 만행을 본국에 보고했어요.
숫자와 논쟁
사망자는 대부분의 학자가 100-150만 명으로 추정해요. 아르메니아인 인구의 절반에서 2/3가 죽었어요.
문제는 지금도 이어져요. 터키 정부는 “학살”이라는 표현을 거부해요. 전시 상황에서 질병·기아로 사망한 것이며 의도적 학살이 아니라는 입장이에요. 터키는 사망자 수도 훨씬 적게 추산해요.
반면 30개 이상의 나라가 이를 집단 학살로 공식 인정했어요. 미국은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어요.
역사적 의미
“집단 학살(Genocide)”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르메니아 학살에서 나왔어요. 유대계 법학자 라파엘 렘킨이 1944년 이 단어를 만들었는데, 나치 유대인 학살과 함께 아르메니아 사례를 염두에 뒀어요.
히틀러는 폴란드 침공 전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지금 아르메니아인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기억되지 않은 학살이 다음 학살의 빌미가 된다는 냉혹한 교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