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19일, 서울 거리에 총성이 울렸어요. 경찰이 학생 시위대에 총을 쐈어요. 185명이 죽었어요. 그런데 그 총성이 독재를 끝냈어요. 이틀 뒤 이승만 대통령이 사임했어요.
이승만의 장기 집권
이승만은 1948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됐어요. 한국전쟁을 거치며 반공 강경파로 자리를 굳혔어요. 그런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자의적으로 고쳤어요.
1952년 “발췌개헌”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해 재선됐어요. 1954년 “사사오입 개헌”(반올림 왜곡)으로 초대 대통령 3선 제한을 없앴어요.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언론을 통제했어요.
3.15 부정선거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가 있었어요. 이승만의 자유당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대규모 부정을 저질렀어요. 사전 투표 조작, 3인조·9인조 공개 투표, 야당 참관인 폭행, 투표함 바꿔치기 등 온갖 방법이 동원됐어요.
이 선거 결과에 반발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어요. 마산에서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해 사망자가 나왔어요. 그러다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죽은 고등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어요. 전국이 끓었어요.
4월 19일
4월 19일,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대거 서울 도심으로 몰려나왔어요. 경무대(청와대)로 행진했어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어요. 총에 맞아 쓰러진 학생들이 거리에 쓰러졌어요.
이날 서울에서만 수십 명이 죽었어요. 전국적으로 185명이 사망했어요.
대학교수단과 이승만 하야
4월 25일, 서울 대학교수들이 거리로 나왔어요. 학생들을 죽인 정권에 항의하는 교수 행진이었어요. 시민들이 함께했어요.
4월 26일 아침, 이승만이 라디오 방송으로 하야를 선언했어요.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했어요. 12년 독재가 끝났어요.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4.19의 한계와 의미
4.19 이후 장면 정부(제2공화국)가 들어섰어요. 그러나 1년도 지나지 않아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로 민주주의가 다시 무너졌어요.
그래도 4.19는 의미가 컸어요. 선거 부정에 항의한 시민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독재를 끝낸 최초의 사례였어요. 이후 한국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원점이 됐어요. 1987년 6월 민주항쟁도 4.19의 계보를 잇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