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서 13개 영국 식민지 대표들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했어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이 문서는 이후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선언 중 하나가 됐어요. 그러나 이 선언이 나오기까지 수십 년의 불만이 쌓여 있었어요.
대표 없는 과세는 없다
영국은 7년 전쟁(1756~1763년) 이후 막대한 전쟁 빚을 지고 있었어요. 이 비용 일부를 아메리카 식민지가 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1765년 인지세법을 시작으로 타운젠드법·차 조례 등 잇달아 세금을 부과했어요.
식민지인들은 거세게 반발했어요. “대표 없는 과세는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가 구호가 됐어요. 영국 의회에 식민지 대표를 보낼 권리도 없으면서 세금만 걷는 건 부당하다는 주장이었어요. 이 논리는 프랑스 계몽사상(루소·로크의 사회계약론)에서도 뒷받침됐어요.
보스턴 차 사건
1773년 12월 16일 밤, 보스턴 항구에서 식민지인들이 영국 동인도회사 선박에 실린 차 342상자를 바다에 던졌어요. 차에 부과된 세금에 항의하는 집단 행동이었어요.
영국 의회는 강경 대응으로 맞섰어요. 보스턴 항구를 봉쇄하고 식민지 자치 권한을 제한하는 강압 법안을 통과시켰어요. 식민지인들은 이를 “참을 수 없는 법률”이라 불렀어요. 강경 대응이 오히려 독립 여론을 키웠어요.
전쟁과 동맹
1775년 4월 렉싱턴·콩코드 전투를 시작으로 전쟁이 시작됐어요. 초반 식민지군(대륙군)은 무기·훈련·보급 면에서 영국군에 크게 뒤졌어요.
전세가 바뀐 건 1777년 사라토가 전투 이후였어요. 대륙군이 영국군 5800명을 항복시킨 이 승리로 프랑스가 식민지 편에 서기로 했어요. 영국과 경쟁 관계였던 프랑스가 자금·군대·해군력을 지원했어요. 스페인과 네덜란드도 뒤를 이었어요.
1781년 요크타운 포위전에서 영국군 7000명이 항복했어요. 사실상 전쟁의 끝이었어요. 1783년 파리 조약으로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공식 인정했어요.
독립이 남긴 질문들
미국 독립의 의의는 단순히 영국으로부터 분리된 게 아니에요. “국민이 스스로 다스린다”는 공화제 원칙을 현실에서 실현한 첫 번째 사례였어요.
그러나 독립 당시 내부 모순도 있었어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선언한 건국자들 다수가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어요. 이 모순은 이후 90년 뒤 남북전쟁이라는 형태로 폭발했어요. 미국 독립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역사 안에 새겨놓은 사건이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