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4월, 남부 연합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섬터 요새를 포격했어요. 미국 남북전쟁의 시작이었어요. 이후 4년간 약 62만~75만 명이 전사했어요. 미국 역사에서 어떤 전쟁보다 많은 미국인이 죽은 전쟁이에요. 그 뿌리에는 노예제를 둘러싼 80년 묵은 갈등이 있었어요.
갈라진 두 경제
독립 이후 미국 남북은 전혀 다른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었어요. 북부는 제조업과 자유 임금 노동 중심의 산업 경제였어요. 남부는 면화·담배 농장 중심의 농업 경제였어요. 이 농장 경제를 지탱한 것이 노예 노동이었어요.
1860년 기준 남부에는 약 400만 명의 흑인 노예가 있었어요. 남부 농장주들에게 노예는 단순한 노동력이 아닌 자산이었어요. 당시 남부 노예의 시장 가치 총액은 약 30억 달러, 철도와 공장을 합친 것보다 컸어요.
확장 문제가 뇌관이 됐어요
갈등이 폭발한 계기는 새로 합류하는 주(州)에 노예제를 허용할지 여부였어요. 서부로 영토가 확장되면서 이 문제가 반복적으로 국회를 흔들었어요. 1850년 타협안, 1854년 캔자스-네브래스카법 등 봉합책이 이어졌지만 갈등은 깊어졌어요.
1860년 대선에서 노예제 확대에 반대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됐어요. 남부 7개 주가 즉각 연방 탈퇴를 선언하고 남부 연합을 구성했어요. 협상은 실패했고 전쟁이 시작됐어요.
노예해방 선언
초반 전쟁은 북부에 불리했어요. 남부군은 뛰어난 장군들(리·잭슨)과 높은 사기를 갖췄어요. 북부는 인구와 산업력에서 압도적이었지만 지휘 체계가 흔들렸어요.
1862년 안티에탬 전투에서 북부가 간신히 승리하자, 링컨은 기회를 잡았어요.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 선언을 발표했어요. 남부 반란 지역의 노예를 자유인으로 선포했어요. 이 선언은 도덕적 전환점이었어요. 전쟁의 목적이 “연방 수호”에서 “노예 해방”으로 확장됐어요. 흑인 병사들이 북부군에 대거 합류했어요.
전쟁의 끝과 재건
1865년 4월 9일, 남부 연합의 리 장군이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했어요. 5일 뒤 링컨이 암살됐어요. 수정헌법 13조로 노예제가 공식 폐지됐어요.
그러나 해방이 평등을 의미하진 않았어요. 재건 시대(Reconstruction) 이후 남부에서는 인종 분리법(짐 크로법)이 시행됐어요. 흑인의 실질적 권리는 100년 뒤 1960년대 민권운동이 되어서야 법적으로 보장됐어요. 남북전쟁은 끝났지만, 그 상처는 오래 이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