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와 나가사키 – 원자폭탄이 바꾼 세계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국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가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투하했어요. 폭발은 지상 600미터 상공에서 일어났어요. 반경 1.6킬로미터 이내는 즉시 초토화됐어요. 사흘 뒤 나가사키에 두 번째 폭탄(팻 맨)이 떨어졌어요. 두 도시의 사망자는 즉시 사망과 이후 방사선 피폭 사망을 합쳐 약 15~20만 명으로 추산돼요.

왜 원자폭탄을 썼나

미국이 원폭 투하를 결정한 배경에는 일본 본토 상륙 작전에 대한 우려가 있었어요. 오키나와 전투(1945년 4~6월)에서 미군 1만 2000여 명이 전사했어요. 일본군과 민간인의 저항은 극렬했어요. 미 군부는 본토 상륙 시 미군 사망자가 수십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어요.

원자폭탄은 이 상륙 작전을 피하면서 일본을 빠르게 항복시킬 수 있는 수단이었어요. 동시에 전쟁이 끝나기 전에 소련보다 먼저 일본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지정학적 계산도 있었다는 분석이 있어요. 소련은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를 했어요.

원폭 투하에 대한 역사적 논쟁

원자폭탄 투하의 정당성은 지금도 논쟁 중이에요. 한쪽은 폭탄이 전쟁을 빨리 끝내 더 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입장이에요. 다른 쪽은 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대량 학살이었으며, 이미 패전이 확실한 일본에 쏜 것은 소련 견제 목적이 더 컸다고 봐요.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8월 15일 항복 방송을 발표한 건 원자폭탄과 소련 참전이 겹친 결과였어요.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결정적이었는지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어요.

핵의 시대가 열렸어요

원폭 투하는 전쟁을 끝낸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어요. 소련은 1949년 첫 핵실험에 성공했어요. 이로써 미소 핵 경쟁이 시작됐어요. 냉전의 공포는 핵전쟁의 공포이기도 했어요.

히로시마·나가사키의 경험은 핵무기 비확산 운동의 원점이 됐어요. 1968년 핵비확산조약(NPT)이 체결됐어요. 그러나 오늘날도 9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요. 히로시마에서 시작된 핵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히로시마가 남긴 기억

히로시마 원폭 돔은 폭발 중심에서 160미터 거리에 있던 건물이에요. 폭풍이 수직으로 내리꽂히면서 외벽 일부가 남았어요.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평화 기념물로 보존돼 있어요.

매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는 평화 기념식이 열려요. 원폭 투하 시각인 오전 8시 15분에 묵념이 진행돼요. 전쟁과 핵무기의 결과를 기억하는 의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