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년 10월, 흑해 연안에서 출발한 제노바 무역선이 시칠리아 메시나 항구에 도착했어요. 배에 탄 선원들은 이미 죽어 있거나 죽어가고 있었어요. 피부가 검게 변하고 몸에 종기가 났어요. 항구 관계자들은 배를 돌려보냈지만 이미 늦었어요. 유럽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이 시작된 거예요.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어요
흑사병(페스트)은 1347년부터 1353년 사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어요. 당시 유럽 인구 약 7500만 명 중 2500만~3000만 명이 사망했어요.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의 60~70%가 줄었어요. 이탈리아 피렌체의 경우 흑사병 이전 9만여 명이던 인구가 이후 4만 명 이하로 줄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페스트균을 옮기는 쥐벼룩이 원인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몰랐어요. 신의 형벌이라는 종교적 해석이 지배적이었어요.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루머가 퍼져 학살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공포가 이성을 앞섰어요.
봉건제의 균열이 시작됐어요
흑사병은 중세 사회의 경제 기반을 통째로 뒤흔들었어요. 노동 인구가 급감하면서 농촌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어요. 살아남은 농민들의 협상력이 갑자기 높아졌어요.
이전까지 농노는 영주의 땅에 묶여 낮은 임금으로 일해야 했어요. 그러나 흑사병 이후 일손이 귀해지자 농민들은 더 좋은 조건을 요구하거나 다른 영주의 땅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농민 임금이 전반적으로 올랐어요. 이를 막으려는 귀족들의 법적 제재가 오히려 농민 반란(1381년 영국 농민 반란 등)을 촉발했어요. 봉건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한 거예요.
교회의 권위가 흔들렸어요
중세 유럽에서 교회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흑사병은 교회도 피해 가지 않았어요. 성직자들이 대거 사망했어요. 일부 성직자들은 환자 곁을 떠나 도망쳤어요.
신에게 기도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경험이 쌓이면서 사람들은 교회 권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어요. 흑사병 이후 유럽 사상계에는 인간 이성과 현세적 가치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해졌어요. 이것이 르네상스(14~17세기)와 종교개혁(16세기)의 지적 토양이 됐어요.
파괴가 낳은 변화
흑사병은 분명 역사상 최악의 재앙 중 하나였어요.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파괴가 중세 유럽 사회를 정체에서 벗어나게 하는 계기가 됐어요. 농노제가 약화됐고, 교회 중심의 세계관이 흔들렸고, 생존한 사람들은 삶과 죽음에 대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14세기 흑사병이 없었다면, 르네상스와 근대의 시작이 다른 형태였을 거라는 역사학자들의 견해가 있어요. 재앙이 시대의 전환점이 된 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