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개인의 욕망이 국가의 방향을 바꾼 사례가 있다면 헨리 8세가 대표적이에요. 왕비와 이혼하려다 교황에게 거절당하자, 아예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고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세웠어요. 그 결과는 영국 역사 전체를 바꾸었어요.
완벽했던 왕의 첫 시작
헨리 8세(1491-1547)는 처음부터 나쁜 왕이 아니었어요. 즉위 초기엔 오히려 르네상스적 교양인이었어요. 신학·음악·시·운동 모두 뛰어났어요. 에라스무스 같은 당대 최고 지식인들과 교류했어요.
첫 왕비 캐서린 오브 아라곤과의 결혼도 정략결혼이었지만, 초기에는 큰 문제가 없었어요.
왕위 계승의 압박
문제는 아들이 없었어요. 캐서린이 여러 번 임신했지만 살아남은 건 딸 메리뿐이었어요. 16세기 유럽에서 왕위 계승권을 가진 딸은 약점이었어요. 헨리는 아들을 원했어요.
그 사이 시녀 앤 불린에게 빠졌어요. 앤은 왕의 정부가 되길 거부했어요. 왕비가 되겠다는 조건이었어요. 헨리는 캐서린과 이혼하기로 결심했어요.
교황의 거부
당시 이혼은 교황의 허락이 필요했어요. 헨리는 캐서린과의 결혼이 성경 레위기에 어긋난다는 논거를 댔어요(캐서린은 헨리의 형수였어요). 결혼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이었어요.
교황 클레멘스 7세는 거부했어요. 이유가 있었어요. 당시 교황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영향권 안에 있었어요. 그런데 카를 5세가 바로 캐서린의 조카였어요. 교황이 황제 고모의 결혼을 무효로 해줄 수가 없었어요.
수장령과 영국 국교회
헨리는 독단적으로 행동했어요. 1534년 수장령(Act of Supremacy)을 반포했어요. 영국 국왕이 영국 교회의 최고 수장이라는 선언이었어요.
로마 교황청과 결별했어요. 영국 교회(성공회)가 탄생했어요. 교리는 크게 바꾸지 않았어요. 루터파와 달리 영국 국교회는 처음엔 의식과 교계 구조를 가톨릭에서 크게 변형하지 않았어요. 달라진 건 수장이 교황에서 국왕으로 바뀐 것이었어요.
왕비들의 운명
헨리는 생애 여섯 번 결혼했어요.
| 왕비 | 운명 | 메모 |
|---|---|---|
| 캐서린 오브 아라곤 | 이혼 | 딸 메리 낳음 |
| 앤 불린 | 참수 | 딸 엘리자베스 낳음 |
| 제인 시모어 | 출산 후 사망 | 아들 에드워드 낳음 |
| 클레베스의 앤 | 이혼 | “플랑드르의 암말” 별명 |
| 캐서린 하워드 | 참수 | 앤 불린 사촌 |
| 캐서린 파 | 생존 | 헨리보다 오래 살았어요 |
수도원 해산
헨리는 수장령 이후 잉글랜드 수도원 700여 곳을 해산했어요. 토지와 재산을 국왕이 몰수했어요. 일부를 귀족들에게 팔거나 나눠줬어요. 이게 영국 중산층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헨리 8세가 세운 영국 국교회는 오늘날 성공회(Anglican Church)가 됐어요. 전 세계 8500만 명 이상의 신자를 가진 거대 교단이에요. 한 왕의 이혼 욕망이 이런 결과를 낳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