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라는 이름은 19세기 독일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붙였어요. 하지만 이 길이 생긴 건 기원전 2세기예요. 한나라가 서역으로 사신을 보내면서 동서를 잇는 무역로가 열렸어요. 비단이 서쪽으로, 로마의 유리와 금이 동쪽으로 흘렀어요.
한나라 – 진나라의 후계자
진나라가 15년 만에 망한 뒤 항우와 유방의 초한전쟁이 벌어졌어요. 유방(고조)이 이겨 한나라를 세웠어요(기원전 206년). 한나라는 400년 이상 지속되며 중국 문명의 기반을 닦았어요. 오늘날 중국인을 “한족(漢族)”, 한국어·중국어 문자를 “한자(漢字)”라 부르는 게 여기서 왔어요.
흉노의 위협
한나라 초기 최대 위협은 북쪽 흉노였어요. 흉노는 기마 유목 민족으로 빠른 기병으로 국경을 약탈했어요. 한고조 유방이 직접 원정을 나갔다가 포위돼 굴욕적인 화의를 맺었어요.
이후 수십 년간 매년 엄청난 물자와 공주를 흉노에 바쳐야 했어요. 이 치욕을 갚은 게 7대 황제 무제예요.
장건의 서역 사행
무제(재위 기원전 141-87)는 흉노에 맞설 동맹을 찾았어요. 서쪽 멀리 월지(月氏)가 흉노에 의해 쫓겨났다는 정보를 들었어요. “월지와 동맹하면 흉노를 동서에서 협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기원전 139년, 장건이 100여 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서쪽으로 떠났어요. 그런데 흉노에 붙잡혀 10년간 억류됐어요. 탈출해서 계속 서쪽으로 나아가 월지를 찾았어요. 하지만 월지는 이미 새 땅(현재의 아프가니스탄)에 정착해 흉노에 복수할 의지가 없었어요.
장건은 13년 만에 겨우 귀국했어요. 동맹 성과는 없었어요. 그러나 그가 가져온 서역 정보는 엄청난 가치가 있었어요. 페르가나(대완) 지역에 땅에서 피를 흘리는 신마(한혈마)가 있다는 정보도 있었어요.
실크로드의 개통
무제는 흉노를 군사적으로 압박하며 서역 길을 열었어요. 한혈마를 얻기 위해 대완 원정도 보냈어요. 서역 도호부를 설치해 교역로를 관리했어요.
한에서 출발한 비단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페르시아·로마까지 전해졌어요. 로마 귀족들이 중국 비단을 매우 비싸게 샀어요. 반대로 로마의 유리 공예품, 페르시아의 금속 제품, 인도의 향신료가 동쪽으로 왔어요.
불교도 이 길을 통해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됐어요. 간다라 불교미술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한국·일본으로 퍼졌어요.
실크로드의 유산
실크로드는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었어요. 동서의 문화·종교·기술이 교류하는 통로였어요. 종이 만드는 기술이 중국에서 서쪽으로 전해졌어요. 화약도 이 길을 통해 서방에 전파됐어요.
실크로드는 1453년 오스만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점령으로 육로 교역이 차단되기 전까지 1,500년 이상 동서 문명의 연결 통로였어요. 이 길을 찾던 유럽이 결국 바닷길(콜럼버스·바스코 다가마)을 개척하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