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려면 남아메리카 끝 케이프혼을 돌아야 해요. 2만km가 넘어요. 파나마 운하가 열리면서 그 거리가 8,000km로 줄었어요. 82km 운하 하나가 세계 무역을 바꿨어요.
프랑스의 실패 (1880년대)
수에즈 운하를 성공시킨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1879년 파나마 운하 회사를 설립했어요. 이집트에서처럼 해수면 높이의 평지 운하를 계획했어요.
하지만 파나마는 이집트가 아니었어요. 열대 밀림, 험준한 산악, 쏟아지는 비, 그리고 황열병과 말라리아가 기다렸어요.
8년 공사 동안 2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황열병과 말라리아로 죽었어요. 1889년 회사가 파산했어요. 프랑스는 220억 달러(현재 가치)를 날렸어요.
미국의 개입
미국은 파나마 운하를 원했어요.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 때 미 해군이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는 데 67일이 걸렸어요. 운하의 군사적 가치를 실감했어요.
초기엔 니카라과 루트를 검토했어요. 하지만 파나마가 선택됐어요. 더 짧았어요.
당시 파나마는 콜롬비아 땅이었어요. 콜롬비아가 조약을 거부했어요. 1903년 파나마가 독립을 선언했어요. 미국이 콜롬비아의 개입을 막아줬어요. 대가로 파나마는 운하 지대를 미국에 영구 임대했어요.
미국의 공사 (1904-1914)
미국이 운하 공사를 이어받았어요. 공사 책임자 조지 고델스가 문제를 하나씩 해결했어요.
황열병 퇴치: 의사 윌리엄 고르가스가 황열병·말라리아 모기 박멸 캠페인을 벌였어요. 배수 개선, 방충망 설치, 위생 관리로 사망률을 극적으로 낮췄어요.
굴라스 커트: 콘티넨털 분수령을 뚫는 거대한 절토 작업이에요. 파나마 지형 중 가장 높은 부분을 삽질로 파냈어요. 산사태가 수시로 공사를 방해했어요.
갑문 시스템: 해수면 높이의 운하 대신 갑문 방식을 채택했어요. 배를 물에 띄워 높낮이를 조절하며 이동하는 방식이에요.
10년 공사. 미국 노동자 5,600명, 서인도 출신 노동자 등 총 7만 5천 명이 일했어요. 사망자 약 5,600명(대부분 서인도 출신 흑인 노동자).
1914년 개통
1914년 8월 15일 첫 배가 통과했어요. 공식 개통식은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취소됐어요.
운하는 미국이 관리하다가 1999년 파나마에 반환됐어요. 파나마 운하청이 운영해요.
2016년 확장 공사로 더 큰 배가 통과할 수 있게 됐어요. 연간 1만 4,000척이 통과해요. 전 세계 해상 무역량의 5%예요.
2025년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 반환을 요구해 외교적 논란이 됐어요. 지정학적 중요성이 여전히 크다는 증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