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9년에 태어난 클레오파트라 7세는 흔히 절세미인으로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한 여인으로 묘사돼요. 그러나 실제 역사 기록은 전혀 다른 인물을 보여줘요. 그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역사상 이집트어를 배운 첫 번째 파라오였고, 그리스어·라틴어·히브리어·아람어 등 7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했어요. 21세에 권좌에 오른 뒤 21년간 이집트를 통치한 정치가였어요.
불안한 왕좌에서 시작했어요
클레오파트라의 집권은 순탄하지 않았어요. 기원전 51년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죽자, 그녀는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공동 통치를 시작했어요. 그러나 남동생 측 신하들이 그녀를 밀어내고 기원전 48년 이집트에서 추방했어요.
클레오파트라는 시리아 국경 근처에서 군대를 모아 반격을 준비했어요. 바로 이 시기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에 도착했어요. 당시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쫓아 알렉산드리아까지 온 상태였어요.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를 만난 건 사랑이 아닌 생존 전략이었어요.
카이사르와의 동맹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 앞에 나타난 방식은 유명해요. 양탄자나 포대에 몸을 숨겨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예요. 경비를 피해 적진 한가운데에 나타난 대담한 행동이었어요.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지지하기로 했어요. 기원전 47년 카이사르의 군사력을 등에 업고 클레오파트라는 왕좌를 되찾았어요. 이후 카이사르와의 관계에서 아들(카이사리온)을 낳았어요.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에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동맹을 맺었어요. 이 역시 로마의 권력을 이용해 이집트를 지키려는 외교 전략이었어요.
이집트를 경영한 통치자
클레오파트라는 단순히 로마 장군들과 교류한 것이 아니었어요. 이집트 내부 통치에도 적극적이었어요. 이집트 신전들을 지원하고 종교 의식에 직접 참여해 민심을 얻었어요. 화폐 정책을 조정하고 무역로를 관리했어요.
당시 이집트는 지중해 최대의 곡물 생산지였어요. 이 경제력을 외교 카드로 활용하는 것이 클레오파트라의 핵심 전략이었어요. 로마에 곡물을 공급하는 이집트의 위치를 지렛대로 삼아 로마의 내정에 영향력을 행사했어요.
최후와 유산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이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했어요. 이듬해 안토니우스는 자살했어요. 클레오파트라도 포로로 잡혀 로마에서 전시될 운명이었어요. 기원전 30년,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독사에 물렸다는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독약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녀의 죽음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300년이 끝났어요.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가 됐어요. 클레오파트라는 독립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