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케네디 암살 소식을 들었나요?” 미국인들에게 이 질문은 “9/11 때 어디 있었나요?”와 같은 의미예요. 세대를 가르는 기억이에요. 1963년 11월 22일,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달라스에서 암살됐어요.
케네디라는 인물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1917-1963)는 43세에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으로 취임했어요. 카리스마 있고, 지적이고, 유머 감각이 있었어요. 아내 재클린과의 화려한 모습이 미디어에 넘쳤어요.
재임 중 대형 사건들을 겪었어요. 쿠바 피그만 침공 실패(1961), 쿠바 미사일 위기(1962)에서 소련과 핵전쟁 직전까지 갔어요. 시민권 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어요.
달라스,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는 텍사스에서 정치적 지지 기반을 다지기 위해 방문했어요. 오픈카 퍼레이드를 하며 달라스 시내를 지나가고 있었어요. 딜리 플라자를 지날 때 총성이 울렸어요.
케네디는 두 발의 총알을 맞았어요. 오후 1시 달라스 파클랜드 병원에서 사망이 선언됐어요.
오즈월드와 재판 없는 죽음
45분 뒤 경찰은 텍사스 교과서 창고(쇼트-스코프 빌딩) 6층 창문에서 총을 쏜 것으로 추정되는 리 하비 오즈월드(24)를 체포했어요. 오즈월드는 전직 해병으로 소련에서 살다 미국으로 돌아온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이틀 뒤인 11월 24일, 오즈월드가 경찰서에서 이송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중계하던 중 잭 루비라는 나이트클럽 주인이 접근해 총을 쐈어요. 오즈월드는 병원에서 사망했어요. 재판은 열리지 못했어요.
워런 위원회와 음모론
린든 존슨 대통령이 연방 대법원장 얼 워런이 이끄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어요. 1964년 발표된 보고서는 오즈월드 단독 범행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하지만 의문이 많이 남았어요. 잭 루비가 왜 오즈월드를 쐈는지, 총알 궤적 논란(매직 불렛 이론), CIA·마피아·쿠바 이민자 개입설 등이 끊이지 않았어요. 1979년 의회 소위원회는 음모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냈어요.
CIA 비밀 문서는 오랫동안 공개가 보류됐어요. 바이든 행정부가 2021-2023년에 걸쳐 상당 부분을 공개했어요. 결정적 새 정보는 없었어요.
역사적 의미
케네디 암살은 미국 정치·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어요. “케네디가 살아 있었다면 베트남 전쟁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암살이 역사의 방향을 바꿨다는 가정이 많아요.
후임 존슨이 공민권법을 통과시키고 위대한 사회 정책을 펼쳤지만, 베트남 전쟁에 깊이 빠져들었어요. “케네디였다면 달랐을 것”이라는 그리움이 케네디를 신화로 만들었어요.
오늘날 JFK 국제공항, 케네디 우주센터 등 그의 이름이 곳곳에 남아 있어요. 암살 60년이 지났지만 음모론은 여전히 인터넷을 달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