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2월 1일, 프랑스 망명 생활을 마치고 테헤란에 도착한 루홀라 호메이니를 수백만 명이 환영했어요. 며칠 뒤 2500년 넘게 이어온 이란(페르시아) 왕정이 끝났어요. 세계가 몰랐던 이슬람 혁명이 탄생한 순간이에요.
팔라비 왕조와 미국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샤(왕)는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독재자였어요. 1953년 CIA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사데크 총리를 쿠데타로 몰아내고 팔라비를 복위시켰어요(모사데크가 영국·미국 석유 회사를 국유화하려 했기 때문이에요).
팔라비는 “백색혁명”이라는 근대화 정책을 폈어요. 여성 참정권, 토지 개혁, 세속화 정책이었어요. 경제 성장도 있었어요. 그러나 비밀경찰 사바크(SAVAK)를 통한 공포 정치, 부패, 서구화에 대한 반발이 쌓였어요.
호메이니와 이슬람 혁명
루홀라 호메이니(1902-1989)는 시아파 이슬람 최고 성직자였어요. 1963년 팔라비의 근대화 정책에 반대 설교를 해서 추방됐어요. 이라크·프랑스 등에서 망명 생활을 했어요.
1978년 이란에서 대규모 시위가 시작됐어요. 팔라비 반대 세력이 좌파·이슬람주의·자유주의자 등 다양했어요. 호메이니가 이들을 묶는 구심점이 됐어요.
팔라비는 탄압하다 타협하다 결국 1979년 1월 16일 이란을 떠났어요. 2월 1일 호메이니가 귀국했어요.
이슬람 공화국
호메이니는 이슬람 법(샤리아)에 기반한 신정 체제를 만들었어요. “벨라야트-에 파키(이슬람 법학자의 통치)”라는 개념으로 최고 종교 지도자(라흐바르)가 정치 최고 권위를 갖는 구조예요. 대통령보다 위예요.
선거도 있어요. 의회도 있어요. 그러나 후보 자격 심사, 언론 통제, 사법부 통제가 모두 종교 권위 아래 있어요.
서구적 생활방식이 억압됐어요. 여성은 히잡 착용이 의무가 됐어요. 알코올이 금지됐어요.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1979년 11월, 이슬람 학생 혁명 추종자들이 테헤란 미국 대사관을 점령했어요. 외교관 52명을 444일간 인질로 잡았어요. 이 사건이 지금도 이어지는 미국-이란 적대 관계의 상징적 출발점이에요.
중동 지형 변화
이란 혁명은 중동 전체를 뒤흔들었어요. 이웃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약해진 이란을 공격했어요(이란-이라크 전쟁, 1980-1988). 이 전쟁에서 미국이 이라크를 지원했어요.
시아파 이슬람 공화국 이란은 레바논 헤즈볼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시리아 아사드 정권, 예멘 후티 반군을 지원하며 “저항의 축”을 형성했어요.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과의 갈등이 지금도 이어지는 중동 분쟁의 핵심이에요.
2022년 이란에서 히잡 강제 착용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었어요. “여성, 생명, 자유”가 구호였어요. 혁명 이후 43년, 이란 사회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