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 – 마케도니아에서 인도까지

기원전 334년,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 3세는 약 4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헬레스폰트(지금의 다르다넬스 해협)를 건넜어요. 나이 스물두 살이었어요. 이후 10년 동안 그는 한 번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쪽으로만 전진했어요. 이집트·페르시아·중앙아시아·인도 북서부까지. 역사상 가장 빠르고 광범위한 정복이었어요.

아버지가 만든 군대를 아들이 쓰다

알렉산더의 성공은 혼자 이룬 게 아니었어요.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마케도니아군을 당대 최강의 군대로 키워놓았어요. 핵심은 팔랑크스였어요. 보병이 6미터짜리 창(사리사)을 들고 밀집 대형을 이루는 전술로, 측면을 기병이 감싸는 구조였어요.

알렉산더는 이 기본 구조 위에 자신만의 전술을 더했어요. 전투 초반 팔랑크스로 적 중앙을 고정시키고, 헤타이로이(동료 기병대)를 이끌고 적의 약한 지점을 직접 타격했어요. 기원전 333년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의 군대를 격파할 때도 이 방식이 결정적이었어요.

페르시아를 무너뜨리다

이수스 전투 이후 알렉산더는 북아프리카로 방향을 틀었어요. 이집트를 점령하고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했어요. 오늘날도 존재하는 이 도시는 알렉산더가 자신의 이름을 붙여 세운 여러 도시 중 하나예요.

기원전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를 다시 격파했어요. 페르시아 제국이 사실상 무너졌어요. 페르세폴리스 왕궁을 점령하고 황금과 보물을 손에 넣었어요. 페르시아 왕궁이 불탄 건 이 시기였어요.

동쪽 끝으로

페르시아를 넘어선 알렉산더는 멈추지 않았어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북부를 거쳐 인도 서북부(히파시스 강, 지금의 베아스 강)까지 진격했어요. 그러나 여기서 병사들이 더 이상 전진하기를 거부했어요. 8년 넘게 싸워온 군대였어요. 알렉산더는 눈물을 흘리며 귀환을 결정했어요.

기원전 323년, 귀환 도중 바빌론에서 알렉산더가 갑작스럽게 사망했어요. 열병이 원인으로 추정되지만 독살설도 끊이지 않아요. 나이 서른셋이었어요.

그가 남긴 것 – 헬레니즘

알렉산더의 정복이 역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영토 크기가 아니에요. 그가 지나간 땅에 그리스 문화가 뿌리내렸어요. 이른바 헬레니즘 문화예요. 그리스어가 공통 언어가 됐고, 그리스 철학·과학·예술이 이집트·페르시아·인도까지 퍼졌어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고대 세계 최대의 지식 집적소가 됐어요. 이 문화적 교류가 이후 로마 제국과 기독교 문명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알렉산더는 죽었지만 그의 정복이 만든 문화 교류는 수백 년을 더 이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