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마음이 가장 많이 바뀐 정복자를 꼽는다면 아소카왕(재위 기원전 268-232)이에요. 칼링가 전투에서 10만 명을 죽이고 15만 명을 노예로 삼은 뒤, 그 참상을 보고 전쟁을 완전히 포기했어요. 이후 불교로 제국을 다스리는 방식을 선택했어요.
마우리아 왕조와 아소카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 마우리아는 기원전 322년 찬드라굽타가 세웠어요.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생긴 권력 공백을 파고들었어요.
아소카는 찬드라굽타의 손자예요. 처음 황위 계승 과정에서 형제들과 피비린내 나는 다툼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즉위 후에도 정복 전쟁을 이어갔어요. 인도 아대륙 거의 전부와 아프가니스탄 일부까지 차지해 역사상 가장 넓은 인도 제국을 만들었어요.
칼링가 전투 – 전환점
기원전 261년, 아소카는 오리사(현 인도 동부)의 칼링가를 정복했어요. 치열한 전투였어요. 10만 명의 칼링가 병사가 죽고 15만 명이 포로가 됐어요. 민간인 사망자도 수십만 명에 달했어요.
전쟁이 끝난 뒤 아소카가 폐허가 된 칼링가를 돌아봤어요. 그는 엄청난 죄책감에 빠졌어요. 아소카 비문(돌에 새긴 칙령)에 직접 이렇게 썼어요: “이 전쟁에서 죽고, 다치고, 포로로 잡힌 모든 사람에 대해 왕은 깊은 슬픔과 후회를 느낀다.”
불교로의 귀의
아소카는 불교로 귀의했어요. 이미 불교 신자였지만 이 사건 이후 더 깊이 헌신했어요.
불교의 가르침(담마·다르마)을 제국 통치 원리로 삼았어요. 폭력 대신 도덕으로 다스리는 것이에요.
아소카 비문: 제국 곳곳의 바위와 돌기둥에 칙령을 새겼어요. 현대 인도 학자들이 19세기에 이 비문을 해독하면서 아소카의 실체가 역사에서 되살아났어요. 오늘날 인도 국기의 아소카 바퀴도 이 비문의 법륜에서 왔어요.
불교 전파: 아소카가 사절단을 보내 불교를 주변 나라에 전했어요. 스리랑카에 아들과 딸을 보내 불교를 전파했어요. 태국·미얀마로도 사절단이 갔어요. 오늘날 동남아 불교는 이 사절 덕분이에요.
동물 보호와 병원: 동물을 무의미하게 죽이는 것을 금했어요. 사람과 동물을 위한 의료 시설을 만들었어요. 도로에 나무를 심고 우물을 팠어요.
아소카 이후
아소카가 죽은 뒤 마우리아 왕조는 빠르게 쇠락했어요. 기원전 185년 마지막 왕이 암살돼 왕조가 끝났어요.
하지만 아소카가 심은 불교의 씨앗은 계속 자랐어요. 아시아 전역에 퍼진 불교의 역사에서 아소카 없이는 이야기가 되지 않아요. 정복자에서 도덕 통치자로 변한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도 역사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