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초까지 한반도에는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가 공존했어요. 고구려는 북부의 강자, 백제는 서남부, 신라는 동남부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셋 다 서로 치고받는 사이였고, 신라는 그 중 가장 늦게 성장한 나라였어요. 그런데 668년, 신라가 이 싸움에서 최후 승자가 됐어요.
신라가 택한 선택 – 당나라와 손잡기
6세기 후반부터 신라는 고구려·백제 양쪽의 협공에 시달렸어요. 특히 의자왕 치하의 백제는 신라를 강하게 압박해 40여 개 성을 빼앗기도 했어요. 신라 선덕여왕 시절에는 상황이 워낙 위태로워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했을 정도예요.
무열왕(김춘추)이 즉위하면서 신라는 전략을 확정해요. 중국 통일 왕조인 당나라 고종과 군사 동맹을 맺는 것이었어요. 당나라 입장에서도 고구려는 오래된 골칫덩이였어요. 수나라가 세 번 원정을 보냈다가 모두 실패한 곳이거든요.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 떨어졌어요.
백제 멸망 – 660년
660년, 신라 문무왕과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연합군이 동시에 백제를 공격했어요. 당군은 바다로 금강 하구에 상륙했고, 신라군은 육로로 북상했어요.
황산벌에서 백제 계백 장군이 5,000명의 결사대로 막아섰어요. 신라군은 여러 차례 퇴각을 반복했지만, 화랑 관창의 희생으로 사기를 회복해 결국 계백의 군대를 무너뜨렸어요. 사비성(현 부여)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항복하면서 백제 700년 역사가 끝났어요.
고구려 멸망 – 668년
백제를 무너뜨린 뒤 당나라와 신라의 다음 목표는 고구려였어요. 고구려는 수·당나라의 수십 년 공격을 버텨온 강국이었어요. 그런데 660년대 들어 내부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어요. 실권자 연개소문이 죽고 세 아들이 권력 다툼을 벌였어요. 장남 남생이 당나라에 투항하면서 고구려의 방어 체계가 무너졌어요.
668년 연합군이 평양성을 함락했어요. 보장왕이 항복하면서 고구려도 멸망했어요.
나당전쟁 – 동맹에서 적으로
백제·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킨 당나라는 약속을 어기고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들었어요. 사비에 웅진도독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심지어 신라에도 계림도독부를 만들었어요.
신라는 이에 맞서 반격했어요. 고구려·백제 유민들과 손을 잡고 당나라 군대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어요. 675년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가 당나라 육군 20만을 격파했고, 676년 기벌포 해전에서 수군도 물리쳤어요. 결국 당나라는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물리고 철수했어요.
삼국통일의 의의와 한계
신라의 삼국통일은 대동강-원산만 이남으로 한정됐어요. 고구려 영토의 상당 부분은 당나라가 가져갔고, 이후 발해가 고구려 후계를 자처하며 북쪽을 차지했어요. “불완전한 통일”이라는 비판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유예요.
그럼에도 이 통일은 한반도에 단일 국가 체제의 기반을 만들었어요. 하나의 문화권, 하나의 언어권이 형성되는 출발점이 됐고, 이후 1,000년 이상 이어지는 한국 문명의 틀을 잡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