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 – 철혈재상이 만든 독일

“현재의 중요한 문제들은 연설이나 다수결로 해결되지 않는다. 철과 피로만 해결된다.” 1862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의 유명한 연설이에요. 그리고 그는 정말 그렇게 했어요. 세 번의 전쟁으로 독일을 통일했어요.

분열된 독일

19세기 초 독일은 나라가 아니었어요. 오스트리아 제국을 포함해 38개의 독립 국가·공국이 모인 “독일 연방”이었어요. 각자 다른 화폐·법·군대가 있었어요.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은 있었지만 “독일 국가”는 없었어요.

프랑스·영국·러시아가 유럽을 주도하는 동안 독일 지역은 조각나 있었어요. 통일의 방법을 두고 두 가지 노선이 있었어요. 오스트리아 중심의 대독일주의, 프로이센 중심의 소독일주의였어요.

비스마르크의 등장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귀족(융커) 출신이었어요. 1862년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가 그를 수상에 임명했어요. 당시 의회와 대립 중이던 왕이 선택한 강경파였어요.

비스마르크는 외교와 전쟁을 결합하는 실용주의자였어요. 이념보다 결과를 중시했어요.

세 번의 전쟁

1차: 덴마크 전쟁(1864)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로 오스트리아와 함께 덴마크를 공격했어요. 승리 후 오스트리아와 영토를 나눴어요. 다음 전쟁의 명분을 만들었어요.

2차: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1866)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관리 방식을 놓고 오스트리아와 싸웠어요. “7주 전쟁”이라고도 해요. 전쟁 준비를 철저히 한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7주 만에 격파했어요. 오스트리아가 독일 연방에서 빠지고, 프로이센이 북독일 연방을 이끌게 됐어요.

3차: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1871) –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를 빌미로 프랑스를 전쟁으로 끌어들였어요.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가 패배했어요. 파리가 포위됐어요. 나폴레옹 3세가 포로로 잡혔어요.

독일 제국 선포

1871년 1월 18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이 선포됐어요. 빌헬름 1세가 독일 황제로 즉위했어요. 장소를 베르사유로 선택한 것은 프랑스에 대한 의도적 굴욕이었어요. 프랑스는 알자스-로렌 지방을 잃었어요. 이 굴욕이 훗날 1차 세계대전의 씨앗이 됐어요.

비스마르크의 아이러니

통일 후 비스마르크는 유럽의 균형을 유지하려 했어요. 독일을 만족한 강대국으로 안정시키려 했어요. 러시아·오스트리아·이탈리아와 복잡한 동맹 체계를 만들었어요.

1888년 빌헬름 2세가 즉위했어요. 젊고 야심만만한 황제는 비스마르크의 신중함을 답답해했어요. 1890년 비스마르크를 해임했어요. 이후 빌헬름 2세의 공격적 외교가 19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어요. 비스마르크가 만든 독일 제국이 그의 퇴장 후 24년 만에 무너진 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