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 9일 저녁 7시, 동독 공산당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가 기자회견에서 당혹스러운 질문을 받았어요. “새 여행 규정이 언제부터 적용됩니까?” 샤보브스키는 준비되지 않은 답변을 했어요. “즉각, 지금 당장, 즉시요.” 이 한 문장이 28년간 베를린을 가르던 장벽을 무너뜨렸어요.
왜 장벽이 세워졌나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미국·영국·프랑스가 관할하는 서독과 소련이 관할하는 동독으로 나뉘었어요. 수도 베를린도 동서로 분단됐어요. 동독 내에 있었지만, 서베를린은 서방의 섬처럼 남았어요.
문제는 동독 주민들이 서베를린을 통해 서독으로 탈출한다는 점이었어요. 1950~60년대 사이 약 350만 명이 이 루트를 통해 빠져나갔어요. 동독 경제에 치명적이었어요. 특히 의사·교사·기술자 같은 전문직이 많이 떠났어요.
1961년 8월 13일 새벽, 동독은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철조망 설치를 시작했어요. 이것이 콘크리트 장벽으로 강화된 게 베를린 장벽이에요. 전체 길이 약 155킬로미터. 장벽은 탈출하는 사람에게 총기 사용이 허가됐어요. 공식 기록으로만 140여 명이 탈출 시도 중 사망했어요.
장벽 붕괴 직전의 동유럽
1989년 들어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이 흔들렸어요. 고르바초프의 개혁 정책(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이 변화의 신호를 보냈어요. 폴란드에서 자유 선거가 열렸어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했어요. 이 헝가리 루트를 통해 동독인들이 대규모로 서독으로 탈출했어요.
동독 내에서도 “우리는 남는다(Wir bleiben hier)” 시위가 연속됐어요. 라이프치히에서 매주 월요 시위가 이어졌어요. 10월 18일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이 물러났어요. 동독 정권이 흔들리고 있었어요.
말실수가 역사를 바꿨어요
그날 밤 샤보브스키의 발표가 TV로 방송되자, 수만 명의 동베를린 시민이 검문소로 몰렸어요. 당황한 국경 경비대는 상부에 지시를 요청했지만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어요. 군중의 압력에 결국 검문소를 열었어요. 동독 시민들이 장벽을 넘어 서베를린으로 쏟아져 들어왔어요.
그날 밤 사람들이 망치와 곡괭이로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어요. “장벽 딱따구리들(Mauerspechte)”이라 불린 이들이에요. 10년간의 분단이 끝났어요.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공식 통일됐어요. 베를린 장벽 붕괴 1년도 채 안 된 시점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