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3년, 미국 해군 제독 매슈 페리가 이끄는 군함 4척이 에도(지금의 도쿄) 앞바다에 나타났어요. 검은 연기를 내뿜는 증기 군함이었어요. 일본인들은 이것을 “흑선(黒船)”이라 불렀어요. 일본에 개항과 통상 조약을 강요하는 압박이었어요. 이 충격이 15년 뒤 메이지 유신의 도화선이 됐어요.
250년 막부 체제의 붕괴
당시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가 지배하는 봉건 국가였어요. 약 250년간의 쇄국 정책으로 외부 세계와 단절돼 있었어요. 페리의 흑선은 이 고립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줬어요.
막부가 서양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자 반발이 커졌어요. 특히 사쓰마·조슈 등 남서 지방 번의 사무라이들이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 중심의 새 정부를 세우자”는 움직임을 이끌었어요. 1868년 막부가 붕괴하고 메이지 천황이 권력을 되찾았어요. 이것이 메이지 유신이에요.
“서양을 배워 서양을 이기자”
메이지 정부의 핵심 방향은 빠른 서양화였어요.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이 미국·유럽 12개국을 2년에 걸쳐 시찰했어요. 서양 법제·교육·산업·군사 시스템을 직접 보고 어떻게 적용할지 연구했어요.
귀국 후 개혁이 전방위로 진행됐어요. 신분제(사무라이 계급)를 폐지했어요. 국민 모두가 의무 교육을 받게 했어요. 독일식 군대, 프랑스식 법률, 영국식 해군을 도입했어요. 서양 기술자를 고용해 철도·제철·방직 공장을 세웠어요. 이 외국인 전문가들을 “お雇い外国人(고용 외국인)”이라 불렀어요.
30년 만에 열강과 전쟁을 벌이다
결과는 놀라웠어요. 1894~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청나라를 이겼어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서양식으로 근대화한 국가가 전통 강국을 꺾은 사건이었어요. 1904~05년 러일전쟁에서는 러시아 해군을 전멸시켰어요. 유색 인종 국가가 유럽 열강을 군사적으로 이긴 최초의 사례였어요. 세계가 충격을 받았어요.
메이지 유신은 불과 30~40년 만에 봉건 국가를 산업 군사 강국으로 바꾼 압축 근대화의 사례예요. 그러나 이 성공은 이후 팽창주의와 침략의 동력이 되기도 했어요. 한반도와 중국에 가한 식민 지배,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길이 여기서 시작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