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은 스스로를 뒤집었어요. 학교가 문을 닫았어요. 학생들이 선생님을 비판하고 구타했어요. 공자의 사당이 파괴됐어요. 이 10년을 문화대혁명이라 불러요. 마오쩌둥은 왜 이런 일을 일으켰을까요?
대약진운동의 실패 – 마오의 위기
1958-1962년,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을 밀어붙였어요. 농업과 공업을 동시에 급속히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었어요. 농민들이 곡물 생산을 멈추고 토법고로(소형 용광로)에서 철을 만들었어요. 비과학적 농법이 강요됐어요.
결과는 재앙이었어요. 1959-1961년 대기근으로 1,500만~4,500만 명이 굶어 죽었어요(역사상 최대 기근 중 하나). 마오는 책임을 져야 했어요. 류샤오치가 국가 주석직을 맡았고, 덩샤오핑이 실권을 쥐었어요. 마오는 주변부로 밀려났어요.
마오의 반격 – 문화대혁명 선언
류샤오치와 덩샤오핑이 농업 개혁을 조금 완화하자, 마오는 이를 “자본주의 부활”이라고 규정했어요. 1966년, 마오는 문화대혁명을 선언했어요. 표면적 명분은 “봉건적·자본주의적 문화 잔재를 청산하자”였어요. 실제 목적은 권력 회복이었어요.
홍위병 – 10대들의 광기
마오의 호출에 학생들이 응답했어요. 고등학생·대학생들이 홍위병(붉은 수비대)으로 조직됐어요. 마오의 어록을 모은 빨간 책(“마오 주석 어록”)을 손에 들고 거리로 나왔어요.
홍위병의 표적은 “구사상·구문화·구풍속·구습관(사구打倒)”이었어요. 절이 부수어지고, 성당이 창고가 됐어요. 전통 악기·고전 서적이 불탔어요. 공자묘가 파괴됐어요.
선생님·교수·지식인들이 자아비판을 강요받았어요. 고깔모자를 쓰고 이름표를 달고 거리를 끌려다니며 비판을 받았어요. 폭행이 일상적으로 일어났어요.
류샤오치는 당에서 쫓겨나 감금됐어요. 1969년 당뇨병과 폐렴으로 적절한 치료 없이 죽었어요. 덩샤오핑은 두 번 실각했어요.
하방 운동 – 도시 청년을 농촌으로
1968년, 마오는 홍위병 운동이 통제 불능으로 과격해지자 이들을 농촌으로 보냈어요. “하방(下放, 아래로 내려가기)”이라 불렀어요. 도시 지식청년 1,600만 명이 농촌과 오지로 이주해 농민과 함께 살며 “재교육”을 받았어요.
이 세대는 훗날 “잃어버린 세대”라고 불려요. 대학 진학 기회를 잃고, 경력이 끊긴 채 10년을 보냈어요.
종식과 결산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죽었어요. 한 달 뒤 마오의 아내 장칭을 포함한 “사인방”이 체포됐어요. 문화대혁명이 공식적으로 끝났어요.
중국 공산당은 후에 문화대혁명이 “심각한 과오”였다고 공식 인정했어요. 직접 사망자는 공식 통계가 없지만 100만~200만 명으로 추정해요. 정치적 박해를 당한 사람은 1,000만 명 이상이에요.
중국이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경제 성장을 시작한 건 문화대혁명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결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