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 논제를 붙였어요. 내용의 핵심은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 관행을 비판하는 것이었어요. 당시 루터는 이 행동이 서유럽 전체를 뒤흔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이 사건은 1000년 넘게 이어온 유럽 기독교 질서를 바꿔놓았어요.
면죄부 – 돈으로 죄를 사다
루터가 분노한 직접적 계기는 면죄부였어요. 당시 가톨릭 교회는 돈을 내면 죄의 벌을 경감해준다는 면죄부를 팔았어요. 교황청이 성 베드로 대성당 재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독일에 면죄부 판매를 독려했어요. 판매책 요한 테첼은 “동전이 헌금함에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연옥에서 빠져나온다”고 선전했어요.
루터는 이것이 신학적으로 잘못됐다고 봤어요. 구원은 교회나 사제가 중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개인 사이의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어요. 성경이 교회 전통보다 우선한다는 주장이기도 했어요. 이 생각이 가톨릭 교리의 근본을 건드렸어요.
인쇄술이 논제를 유럽에 뿌렸어요
루터의 95개 논제가 전례 없는 파급력을 가진 이유는 구텐베르크 인쇄술 덕분이었어요. 1450년대 발명된 활판 인쇄술은 이 시기에 이미 유럽 전역에 퍼져 있었어요.
루터의 논제는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번역돼 인쇄됐어요. 단 2주 만에 독일 전역으로, 한 달 내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어요. 이전 시대였다면 필사본으로 천천히 퍼지거나 교회가 봉인했을 내용이, 인쇄술 덕분에 수만 부가 동시에 유통됐어요. 중세 교회가 막을 수 없는 속도였어요.
교황과의 결별
교황청은 루터에게 견해를 철회하라고 요구했어요. 루터는 거부했어요.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루터는 황제 카를 5세 앞에 서서 “성경과 이성으로 반박되지 않는 한 나는 철회할 수 없다”고 선언했어요. 그 자리에서 이단으로 선고됐어요.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루터를 보호하면서 암살을 피할 수 있었어요.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어요. 이 번역 성경이 독일어 표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종교개혁이 바꾼 세계
루터의 운동은 이후 칼뱅·츠빙글리 등 다양한 개혁자들과 합쳐지며 프로테스탄트(개신교)라는 새로운 기독교 분파를 낳았어요. 유럽은 가톨릭과 개신교로 갈렸어요. 30년 전쟁(1618~1648년)을 포함한 종교 전쟁이 이어졌어요.
그러나 장기적으로 종교개혁은 종교 다원주의와 개인의 신앙 자율성이라는 개념을 유럽에 심었어요. 중세 가톨릭의 단일 권위가 무너지고, 각 개인이 성경을 직접 읽고 판단한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근대적 개인주의의 씨앗이 됐어요. 루터가 교회 문에 붙인 논제 한 장이 세상을 바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