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4세 – 짐이 곧 국가다

“짐이 곧 국가다(L’État, c’est moi).” 루이 14세(1638-1715)가 실제로 이 말을 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그의 통치 방식을 완벽하게 표현해요. 72년이라는 유럽 역사상 가장 긴 재위 기간, 그리고 절대왕정의 극단이었어요.

5살에 즉위

루이는 1643년 아버지 루이 13세가 사망하면서 5살에 왕위에 올랐어요. 어린 왕이 실권을 갖기 전에는 어머니 안 도트리슈와 재상 마자랭이 통치했어요.

루이 14세가 어린 시절 겪은 것이 프롱드의 난(1648-1653)이에요. 귀족들이 왕권에 반기를 든 내전이었어요. 어린 루이가 파리에서 도망쳐야 하는 굴욕을 겪었어요. 이 경험이 귀족을 완전히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을 심었어요.

베르사유 – 귀족을 통제하는 황금 새장

1682년 루이는 수도를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옮겼어요. 궁전 건설에 오늘날 가치로 수조 원이 들었어요.

베르사유 궁전의 진짜 목적은 귀족 통제였어요. 귀족들이 베르사유에 살도록 했어요. 왕의 아침 기상(레베)부터 취침(쿠셰)까지 모든 의식에 귀족들이 참석해야 했어요. 왕의 셔츠를 입혀드리는 영예, 식사 때 냅킨을 올려드리는 특권 – 이런 의식이 귀족 위계를 결정했어요.

귀족들이 왕의 눈 밖에 날까 봐 베르사유를 떠나지 못하는 동안 지방 영지 관리는 왕이 임명한 관료가 맡았어요. 귀족의 실질적 권력이 사라졌어요. 황금 새장이었어요.

루이 14세의 전쟁들

루이는 프랑스를 유럽 최강으로 만들었어요. 군사력에 막대한 투자를 했어요. 재임 중 전쟁만 4번 치렀어요.

  • 네덜란드 전쟁(1672-1678): 네덜란드 침략. 결국 성공하지 못했어요.
  • 9년 전쟁(1688-1697): 영국·오스트리아·스페인 등 대동맹에 맞섰어요.
  •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1714): 손자 필리프를 스페인 왕으로 만들려다 유럽 전체를 적으로 돌렸어요.

낭트 칙령 폐지

1685년 루이는 낭트 칙령을 폐지했어요. 낭트 칙령(1598)은 프랑스 내 위그노(개신교)의 종교 자유를 보장한 법이에요. 폐지 후 위그노 30-40만 명이 해외로 탈출했어요. 상인·기술자·지식인들이었어요. 프랑스 경제에 큰 타격이었어요.

빛나는 세기의 그늘

루이 14세 시대는 프랑스 문화의 절정이기도 해요. 몰리에르·라신·코르네유·라퐁텐이 이 시기 활동했어요. 프랑스어가 유럽 외교어가 됐어요.

하지만 빛나는 세기의 비용은 가혹했어요. 연이은 전쟁과 거대한 궁전 건설로 국가 재정이 파탄 났어요. 세금 부담은 민중에게 돌아갔어요.

루이가 1715년 사망했을 때 프랑스는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었어요. 증손자 루이 15세, 16세를 거치며 불만이 쌓였어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터졌어요. 절대왕정의 극단이 만든 결말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