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 27년 망명의 기록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혀요. 임시정부는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에서 세워진 망명 정부예요. 27년간 일본과 싸우다 1945년 해방을 맞았어요. 그 중심에 백범 김구(1876-1949)가 있었어요.

젊은 시절 – 의병부터 동학까지

김구는 황해도 해주 출신이에요. 어릴 때 동학에 입문했어요.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어요. 1896년에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인이라고 오인해 일본군 중위를 죽이고 사형 판결을 받았어요. 고종의 특사로 석방됐어요.

1905년 을사조약 이후 교육 구국 운동에 나섰어요. 학교를 세우고 교사로 일했어요. 1911년 안악사건으로 일제에 체포돼 15년 형을 받았다가 석방됐어요.

상하이 임시정부

3.1운동 이후 1919년 4월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어요.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 안창호가 내무총장을 맡았어요.

김구는 경무국장으로 임시정부에 합류했어요. 이후 내무총장·국무총리를 거쳐 1927년 국무령(수반)에 올랐어요. 1930년대 한국국민당을 창당하고 이후 한국독립당을 이끌었어요.

한인애국단 – 이봉창·윤봉길

1931년 일제의 만주 침략으로 임시정부가 더 어려워졌어요. 김구는 적극적인 무력 항쟁을 선택했어요. 한인애국단을 조직했어요.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이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어요. 명중하지 못했지만 전 세계에 충격을 줬어요.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이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어난 천장절(일왕 생일) 기념식에 폭탄을 던졌어요. 상하이 점령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이 죽고 여러 고위직이 중상을 입었어요.

이 사건들로 중국 국민당 장제스가 임시정부를 주목하게 됐어요. 중국의 지원을 받아 한국광복군이 창설됐어요.

이동의 세월

임시정부는 일본의 추격을 피해 상하이에서 항저우·전장·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충칭으로 이동했어요. 27년간 7번 수도를 옮겼어요.

1940년 충칭에 정착했어요. 한국광복군이 조직돼 미국 OSS(전략사무국)와 협력해 국내 침투 작전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갑자기 항복했어요. 작전을 실행하기 전이었어요.

해방 이후 – 분단 반대

1945년 11월, 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했어요. 그런데 미군정은 임시정부를 공식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김구는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했어요. 남북 분단이 되면 통일이 어렵다고 봤어요. 1948년 4월, 70대 노인의 몸으로 평양을 찾아가 김일성과 남북협상을 했어요. 분단을 막아보려는 마지막 시도였어요. 하지만 실패했고, 같은 해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됐어요.

1949년 6월 26일, 김구는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의 총에 맞아 암살됐어요. 74세였어요. 누가 배후인지 아직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