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내전 – 중국은 어떻게 둘로 나뉘었나

오늘날 “중국”이라고 하면 두 정치 실체가 있어요. 중화인민공화국(본토)과 중화민국(대만)이에요. 이 분단의 역사는 국공내전(1927-1949)에서 시작됐어요.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싸움이에요.

두 세력의 형성

1911년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선포됐어요. 그러나 실질적으로 각 지역을 군벌들이 지배했어요.

쑨원이 국민당을 이끌며 통일을 추구했어요. 소련 지원 아래 공산당도 창당됐어요(1921). 초기에는 국민당과 공산당이 군벌에 맞서 협력했어요(제1차 국공합작).

쑨원이 1925년 사망하고 장제스(1887-1975)가 국민당을 이어받았어요.

1927년 상하이 쿠데타

1927년 4월, 장제스가 상하이에서 공산당원들을 학살했어요. 수천 명이 죽었어요. 국공합작이 끝났어요.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시작됐어요.

마오쩌둥(1893-1976)은 1934-1935년 “대장정”을 이끌었어요. 국민당의 포위 공격을 피해 공산당 군대가 1만km를 이동한 사건이에요. 시작 인원 8만-10만 중 1만 명 정도가 살아남았어요.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마오가 당 지도권을 확고히 했어요.

항일전쟁 (1937-1945)

1937년 일본이 중국 본토를 전면 침략했어요. 국민당과 공산당은 일본에 맞서 제2차 국공합작을 맺었어요.

표면적 협력이었어요. 실제로 두 세력은 서로를 견제하며 자신의 세력 확장에 주력했어요. 공산당은 농촌 지역에서 토지 개혁을 통해 농민의 지지를 얻었어요. 이것이 1945년 이후 내전에서 결정적이었어요.

최후의 결전 (1945-1949)

일본 패전 후 내전이 재개됐어요. 국민당이 초반 우세였어요. 미국의 지원을 받았고, 군사력도 컸어요. 그러나 내부 부패, 경제 실패, 민심 이탈이 심각했어요.

공산당은 농민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했어요. 소련제 무기도 지원받았어요. 1948-1949년 주요 전투에서 연속 승리했어요.

1949년 1월 베이징을 점령했어요. 4월 양쯔강을 건너 남쪽으로 진격했어요. 국민당 정권이 순식간에 무너졌어요.

두 개의 중국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이 베이징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했어요.

장제스는 200만 명의 군인·민간인과 함께 대만으로 물러났어요. 중화민국이 대만을 통치하게 됐어요. 유엔 상임이사국 자리도 가져갔어요. 그 자리는 1971년에야 중화인민공화국에 넘어갔어요.

국공내전이 만든 이 분단은 70년이 넘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대만해협 양안 관계는 지금도 세계 정치의 뇌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