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전쟁 – 쿠웨이트 해방 100시간

1990년 8월 2일 새벽, 이라크 탱크가 국경을 넘어 쿠웨이트를 침공했어요. 쿠웨이트 군대는 저항다운 저항도 못 하고 이틀 만에 무너졌어요. 그로부터 6개월 뒤, 미국이 이끄는 34개국 연합군이 이라크에 반격했어요. 지상전은 불과 100시간 만에 끝났어요.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사담 후세인(1937-2006)은 1979년 이라크 대통령이 됐어요. 냉전 시대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 실용적으로 양쪽을 이용했어요. 1980년 이란 혁명으로 이슬람 공화국이 된 이란을 공격해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을 벌였어요. 8년 전쟁으로 이라크는 막대한 외채를 졌어요.

전쟁 채권자 중 하나가 쿠웨이트였어요. 사담은 쿠웨이트가 이라크 남부 유전에서 월경 채굴을 한다고 주장했어요. 역사적으로 쿠웨이트는 이라크 땅이었다는 주장도 했어요.

침공과 국제 사회

8월 2일 침공은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어요. 냉전이 막 끝난 시점이었어요. 미국은 이를 새로운 세계 질서의 시험대로 봤어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주도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끌어 냈어요. 소련도 동참했어요. 이라크에 1991년 1월 15일까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군사력을 사용한다는 결의안이 통과됐어요.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이 집결했어요. 34개국 60만 명의 병력이에요.

사막의 폭풍

1991년 1월 17일 새벽, 공습이 시작됐어요. 작전명 “사막의 폭풍(Operation Desert Storm)”이에요. 5주 넘게 이어진 공중 폭격이었어요.

CNN이 생중계를 했어요. 야간 투시 카메라로 찍은 폭격 영상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방송됐어요. “비디오 게임 같다”는 말이 나왔어요. 그러나 이라크 민간인 수천 명도 죽었어요.

2월 24일 지상전이 시작됐어요. 슈워츠코프 장군이 지휘한 연합군이 사막을 우회해 이라크군의 측면을 쳤어요. “허먼 슛”이라 불리는 전술이에요.

100시간 만에 이라크군이 무너졌어요. 쿠웨이트가 해방됐어요.

이라크 쪽 결말

부시는 바그다드까지 진격해 사담을 제거하지 않았어요. 유엔 결의는 쿠웨이트 해방까지였고, 더 나아가면 연합이 깨질 수 있었어요. 또 사담이 없어지면 이란이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어요.

사담은 살아남았어요. 하지만 강력한 제재를 받았어요. 북부 쿠르드 지역과 남부 시아파 지역에 비행 금지 구역이 설정됐어요.

1991년 걸프 전쟁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의 전사(前史)예요. 그 불씨가 꺼지지 않아 12년 뒤 다시 미국과 이라크가 전쟁을 벌였어요.

걸프 전쟁은 현대 전쟁의 성격을 바꿨어요. 정밀 유도 무기, 야간 전투, 미디어 전쟁이 중요해졌어요. “초전·단기 결전”이라는 미군 교리의 상징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