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종교재판 뒤 이렇게 중얼거렸다는 일화가 있어요.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이 말이 과학과 종교 권력의 충돌을 완벽하게 요약해요.
코페르니쿠스의 유산
갈릴레이 이전에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있었어요.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지동설을 책으로 출판했어요. 당시엔 큰 파장이 없었어요. 책이 어렵고 독자가 적었기 때문이에요. 코페르니쿠스 자신도 사망한 해 출판했어요.
문제는 갈릴레이가 이를 대중화했을 때 벌어졌어요.
망원경과 발견들
1609년 갈릴레이는 네덜란드에서 개발된 망원경을 개선해 직접 만들었어요. 그리고 하늘을 봤어요.
발견한 것들이 쏟아졌어요:
– 달 표면이 울퉁불퉁하다 (완전한 구가 아니에요)
– 목성에 위성 4개가 있다 (모든 것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게 아니에요)
– 금성에 달처럼 위상 변화가 있다 (금성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증거예요)
– 태양에 흑점이 있다 (태양이 완전한 구가 아니에요)
이 관측들은 지동설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였어요.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반박하는 것이었어요.
첫 번째 경고 (1616)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어요. 당시 교회는 천동설(지구 중심)을 공식 입장으로 삼고 있었어요. 성경 해석상 지구가 고정돼 있어야 했거든요.
1616년 종교재판소가 갈릴레이를 불렀어요. 지동설을 가르치거나 옹호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어요. 갈릴레이는 이를 받아들이는 척했어요.
대화록과 재판
1632년 갈릴레이는 「두 가지 주요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를 출판했어요. 형식은 천동설 지지자와 지동설 지지자의 대화였지만, 실질적으로 지동설이 옳다는 책이었어요. 그런데 천동설 지지자 캐릭터를 “심플리치오(Simplicio, 단순한 사람)”로 설정했어요. 교황 우르바노 8세를 풍자했다는 해석이 나왔어요.
1633년 갈릴레이는 재판을 받았어요. 당시 70세였어요. 건강도 나빴어요. 재판 결과는 지동설 포기 서약과 가택 연금이었어요.
의미
갈릴레이는 죽을 때까지 가택 연금 상태였어요. 1642년 사망했어요.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회가 갈릴레이를 부당하게 대우했음을 공식 인정했어요. 재판 후 359년 만이었어요.
갈릴레이 재판은 단순히 한 과학자의 비극이 아니에요. 지식의 권위가 교회에서 과학으로 이동하는 과정의 상징적 사건이에요. 근대 과학 혁명의 핵심 장면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