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민주항쟁 – 1987년 한국이 직선제를 쟁취한 방법

1987년 6월 10일부터 29일까지, 한국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왔어요. “독재 타도, 직선제 개헌”을 외쳤어요. 군부 정권은 결국 무릎을 꿇었어요. 6.29 선언으로 직선제를 수용했어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예요.

전두환 정권의 장기 집권 계획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은 7년 단임 헌법을 만들어 1988년 퇴임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1987년 4월, 전두환은 “현행 헌법대로 후계자에게 권력을 넘기겠다”고 선언했어요. “호헌(護憲) 조치”였어요. 현행 헌법은 대통령을 선거인단이 뽑는 간선제였어요.

사실상 군부 후계자에게 권력을 넘기겠다는 선언이었어요. 시민들은 분노했어요.

박종철·이한열 – 두 죽음이 불꽃을 당기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경찰 조사 중 고문으로 사망했어요.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며 단순 쇼크사로 발표했어요. 사실이 알려지자 전국이 들끓었어요.

5월에는 고문 은폐 사실까지 드러났어요. 경찰이 고문 경관 2명만 처벌하고 공범들을 숨겼다는 게 밝혀졌어요.

6월 9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쓰러졌어요. 27일 만에 사망했어요. 쓰러진 이한열을 동료가 붙잡고 있는 사진이 전 세계에 퍼졌어요.

6월 항쟁 – 전국의 거리

6월 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동시다발 시위가 터졌어요. 학생만이 아니라 직장인, 주부, 중장년층이 함께 나왔어요. 흰 손수건을 들고 “독재 타도”를 외쳤어요.

최루탄 연기가 도시를 뒤덮었어요.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이 도심에서 시위를 벌였어요. “넥타이 부대”라는 말이 생겼어요.

6월 18일, 최루탄 추방 결의대회에 100만 명 이상이 모였어요.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에는 전국 34개 도시에서 100만 명이 참여했어요.

6.29 선언

6월 29일, 민정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가 특별 선언을 발표했어요. 직선제 개헌 수용, 김대중 사면·복권, 언론 자유 보장 등을 담았어요.

전두환 정권이 굴복한 거예요. 미국의 압박, 1988 서울올림픽을 앞둔 국제 여론, 군 투입 시 예상되는 유혈 사태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어요.

그해 12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뽑았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야당 분열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어요. 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가 회복됐다는 점에서 6월 항쟁의 의미는 분명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