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년 6월, 나폴레옹은 약 60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했어요. 당시 유럽에서 나폴레옹에게 대적할 수 있는 나라는 없었어요. 그러나 6개월 후 러시아에서 돌아온 병력은 10만이 채 되지 않았어요. 역사상 가장 참담한 군사 패배 중 하나였어요.
왜 러시아를 침공했나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은 경제적 이유가 컸어요.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령을 통해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려 했어요. 유럽 각국이 영국과 교역하지 못하게 막는 정책이었어요. 그러나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이 봉쇄령이 러시아 경제에도 해롭다며 영국과의 교역을 재개했어요.
나폴레옹은 이를 배신으로 봤어요. 러시아를 빠르게 굴복시켜 다시 봉쇄령에 참여시키겠다는 계획이었어요. 수개월 안에 결판을 낼 수 있다고 믿었어요.
러시아는 싸우지 않았어요
그러나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러시아군은 정면 대결을 피하고 후퇴하면서 식량과 물자를 불태웠어요. 이른바 청야전술이에요. 마을마다 식량 창고가 비어 있었어요. 프랑스군은 그 드넓은 러시아 땅을 전진하면서 현지에서 조달할 것을 기대했지만, 얻을 게 없었어요.
9월, 나폴레옹은 마침내 모스크바에 입성했어요.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모스크바를 통째로 불태우고 떠났어요. 빈 도시에 겨울이 닥쳤어요.
보급이 무너졌어요
출발 당시 60만 군대가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0만 이하로 줄었어요. 전투 손실보다 질병·탈영·보급 실패로 인한 손실이 더 컸어요. 당시 군대 이동에서 식량 보급은 현지 조달에 크게 의존했는데, 청야전술로 현지에 아무것도 없었어요.
말도 먹이를 찾지 못해 쓰러졌어요. 대포와 짐마차를 끌 말이 없어지자 군대의 기동력도 떨어졌어요. 알렉산드르 1세가 협상에 응하지 않자 나폴레옹은 10월 결국 모스크바에서 철수를 결정했어요.
겨울 퇴각의 참사
10월 말부터 시작된 귀환 행군은 재앙이었어요.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기온에 병사들은 동상으로 쓰러졌어요. 정복자로 왔다가 패잔병으로 걷는 길에, 코사크 기병과 러시아 민병대가 끊임없이 측면을 공격했어요. 11월 베레지나 강 도하 과정에서 수만 명이 추위와 익사로 목숨을 잃었어요.
러시아 원정의 실패는 나폴레옹 제국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어요. 이듬해 유럽 연합군이 프랑스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1814년 나폴레옹은 엘바섬으로 유배됐어요. 강력한 군사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이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