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독일 전차부대가 폴란드 국경을 넘었어요. 이틀 후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했어요. 2차 세계대전의 공식 시작이었어요. 이후 6년간 전 세계 70~85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어요. 어쩌다 이 전쟁이 시작됐을까요.
베르사유 조약 – 복수의 씨앗
1919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에서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은 패전국 독일에 가혹한 조건을 부과했어요. 영토의 13%를 빼앗겼어요. 군대를 10만 명으로 제한했어요. 그리고 1320억 금마르크라는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물렸어요.
독일인들은 이 조약을 굴욕으로 받아들였어요. 특히 전쟁 책임을 독일에 전가하는 231조는 강한 반발을 샀어요. 경제학자 케인스는 이 조약이 유럽 경제를 망가뜨리고 또 다른 전쟁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어요. 그 경고가 현실이 됐어요.
대공황이 극단주의의 온상이 됐어요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로 시작된 대공황은 독일에도 직격탄을 날렸어요. 1932년 독일 실업률은 30%에 달했어요. 저축이 휴지조각이 된 중산층과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거리에 넘쳤어요.
이 혼란 속에서 히틀러의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 급성장했어요. 나치당은 베르사유 조약의 불평등을 타파하고 독일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선동으로 지지를 끌어모았어요. 유대인을 독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반유대주의도 핵심 메시지였어요. 1932년 선거에서 나치당은 제1당이 됐어요. 1933년 1월 히틀러가 총리에 임명됐어요.
유화 정책의 실패
히틀러가 집권 후 베르사유 조약을 공공연히 어기기 시작했어요. 1936년 비무장지대인 라인란트에 군대를 보냈어요. 1938년 오스트리아를 병합했어요. 같은 해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 지방을 요구했어요.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막지 않았어요. 1938년 뮌헨 협정에서 수데텐 지방을 독일에 넘기는 조건으로 “더 이상의 영토 요구는 없다”는 히틀러의 약속을 받아냈어요.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런던으로 돌아와 “우리 시대의 평화”를 선언했어요. 그러나 이듬해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 전체를 점령했어요.
유화 정책은 침략자를 막은 게 아니라 더 큰 요구를 부추겼어요.
폴란드 침공과 전쟁 선언
1939년 8월, 독일과 소련이 불가침 조약(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을 체결했어요. 두 강대국이 폴란드를 나눠 갖기로 비밀 합의한 조약이기도 했어요.
9월 1일 독일이, 17일에는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했어요. 폴란드는 한 달 만에 함락됐어요. 영국과 프랑스는 뒤늦게 선전포고했지만, 폴란드를 구하지는 못했어요. 이후 6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 펼쳐졌어요.